[분수대] 성탄 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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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기독교 축제일인 크리스마스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없다.

막연히 3세기 들어서로 추정되고 있다. 더구나 초기에는 그 날짜가 일정하지 않아서 지역에 따라 1월 6일,3월 25일, 12월 25일 등 들쭉날쭉했다.

그러다 로마 교회가 354년부터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키기 시작하고 동방교회, 즉 그리스정교가 그 뒤를 따르면서 이 날로 굳어졌다.

하지만 예수가 태어난 날이 12월 25일이라는 증거는 없다. 예수의 탄생을 상세히 기록한 신약성서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에도 날짜에 대한 언급은 없다. 따라서 12월 하순에 행해지는 로마의 축제였던 사투르날리아와 크리스마스를 연결짓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로마에서는 매년 12월 21일부터 31일까지 농경신 사투르누스를 숭배하는 의식이 성대하게 베풀어졌다. 이 기간 중에서도 일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지(冬至)가 막 지난 12월 25일은 '태양이 소생하는 날'이라고 해서 매우 특별히 여겨졌다.

농경력(農耕曆)상 제일(祭日)에 예수의 탄생을 결합시켜 만든 신화가 크리스마스인 셈이다. 기독교인들 사이에 크리스마스 이브, 즉 성탄전야가 특히 중시되는 것은 일몰을 하루의 시작으로 보던 초기 기독교의 전통에서 유래했다.

종교적 축제일인 크리스마스가 세속적 의미의 휴일개념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선물을 주고받는 풍습이 일반화하면서 상업주의적 색채도 짙어졌다. 그렇지만 유럽이나 미국 등 서구 기독교권의 성탄전야는 우리와 완전히 딴 판이다.

크리스마스 트리가 보이는 식탁에 사랑하는 가족끼리 둘러앉아 식사를 함께 하며 덕담을 주고받는 것이 전형적인 성탄전야의 풍경이다. 거리는 우리의 설날이나 추석 전날 밤의 텅빈 분위기를 연상케 한다.

해마다 그랬듯 오늘 저녁에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것이다. 눈이 내리든 내리지 않든 도로마다 밀리는 차량들로 몸살을 앓을 것이고, 젊은이들이 몰리는 거리는 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을 것이다.

서로를 찾는 들뜬 목소리로 휴대전화는 불통사태를 빚을 것이고, 술집과 음식점마다 대목을 보려고 아우성일 것이다. 나라마다 문화가 다른 거야 당연하다 하겠지만 그저 먹고 즐기는 크리스마스 이브라니 왠지 씁쓸하다. 사랑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소외된 이웃과도 함께 하는 성탄전야가 됐으면 좋겠다. "메리 크리스마스!" "좌유 노엘!" "펠리스 나비다드!"

배명복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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