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문사 규명 멈춰서는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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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독재정권의 부정적 산물이자 현대사의 오점을 씻어내기 위한 의문사 진상규명 작업이 위원회 내부의 갈등으로 좌초위기를 맞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국민적 여망을 업고 출발한 '과거사 바로잡기'작업이 왜 이런 상황에 직면해야 하는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의문사 유가족들이 1년여 이상 엄동설한에도 불구하고 국회 앞 천막농성을 펴면서 절규 끝에 이루어낸 것이다. 지난해 10월 첫 활동 후 최종길 교수와 장준하씨의 공권력에 의한 타살의혹 규명 등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1년6개월 활동시한을 4개월 남짓 남겨둔 현 진행과정은 진정 등을 포함해 당초 조사하기로 했던 83건 중 14건만 종결하는 데 그치고 있다.

사실 위원회는 출발부터 한계를 안고 있었다.수사가 아닌 조사권밖에 없어 진실접근이 쉽지 않았고 검찰.경찰.국가정보원.국군기무사령부 등 소위 권력기관이 비협조적인 것도 큰 문제였다. 이는 80년 군 녹화사업과 관련한 의문사 사건이 최근 불거지면서 기무사가 자료확인을 위한 위원회의 현장방문 요청을 거부한 데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반관반민(半官半民)의 어정쩡한 조직성격도 장애여서 파견된 사람들이 스스로 권력기관에 손대기가 간단치 않은 것이다.

역사의 진실규명에는 성역이 있을 수 없고 또 의문사 관련 유가족들의 아픔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의문사 유가족들의 주장처럼 위원회에 소환권과 강제권을 부여하는 법개정은 나머지 짧은 활동기간 등을 고려할 때 현실적 실익이 적어 보인다. 위원회의 우선과제는 내부갈등을 마무리하고 '진실과 화해'를 위한 목적에 맞게 역량을 모으는 일이다.

의문사 사건 대부분이 독재권력과 그 하수인이었던 강압적 권력기관의 산물인 만큼 이들 기관은 조직 자체가 거듭난다는 자세로 협조를 다해야 한다. 의문사 진상규명을 흐지부지 끝내 제2의 반민특위로 만들 수는 없다. 위원회가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가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면 활동시한을 연장하는 법개정도 가능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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