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릴레이] 클레오파트라와 과학 진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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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3면

이집트의 마지막 여왕인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의 연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는 '클레오파트라의 코'는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지만, 정작 그녀가 고대 과학의 진흥에 커다란 역할을 했던 인물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헬레니즘 시대부터 5세기에 이르기까지 고대 학문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알렉산드리아의 무세이온(Museion)은 클레오파트라의 학문에 대한 사랑으로 번창할 수 있었다.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무세이온은 도서관.동물원.식물원.천문대.실험실.해부실 등을 갖추고 많은 학자가 모여 활발한 연구활동을 했던 곳이다. 알렉산드리아는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드로스가 설립한 고대 도시였다.

기원전 280년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알렉산드리아의 왕궁 내에 연구교육기관인 무세이온을 설립했다.

무세이온의 도서관에 있는 엄청난 양의 장서는 당시까지의 모든 책을 모아놓은, 그야말로 고대 문화의 보고였다.

프톨레마이오스 왕가는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모든 책을 필사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어 시행했고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은 수십만권의 파피루스 책을 소장하게 되었다.

기원전 47년 로마의 정복자 카이사르가 이집트를 침공할 때 무세이온에 있던 책들은 소실의 위기를 맞았다. 당시 카이사르는 전술적인 필요에 의해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모든 배에 불을 질렀는데, 이 불이 육지에 있는 무세이온으로 번져 그곳에 있던 수만권의 두루마리 책이 불에 탔던 것이다.

카이사르가 죽은 뒤 이집트로 돌아온 클레오파트라는 불에 탄 무세이온을 재건하려고 마음먹었다.

클레오파트라의 새로운 연인이 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사랑의 표시로 기원전 40년께 알렉산드리아의 무세이온과 쌍벽을 이루던 페르가몬의 도서관을 강점하고 이곳에 있던 20만 권의 두루마리를 사랑하는 클레오파트라에게 선물했다.

5세기에 이르기까지 알렉산드리아에서 과학이 융성할 수 있었던 데에는 클레오파트라의 책과 과학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임경순 포항공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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