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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해, 나도 모르게 자식에게 옮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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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부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녀에게 전염병을 옮기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백일해(百日咳)다. 백 일 동안 기침이 지속되는 백일해는 세균으로 전염된다. 1980년대 국가 차원의 예방정책 이후 발병이 줄어 잊혀진 병으로 인식되지만 지난해부터 발병 건수가 심상치 않게 증가하고 있다.

어른은 대부분 심한 만성기침 정도로 그치지만 영·유아에게는 발작성 기침에 따른 합병증으로 뇌손상은 물론 심하면 사망에 이른다. 백일해는 생후 2·4·6·18개월, 그리고 만 4~6세 사이 총 5회에 걸쳐 DTaP(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백신을 접종해야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접종 효과는 길어야 10년이다. 청소년기가 되면 청소년 및 성인용 백신의 추가 접종으로 떨어진 면역력을 보강해야 한다. 하지만 사라진 병이라는 인식 때문에 그 필요성이 간과된다.

성인의 경우 감염돼도 대부분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병의 진단이 늦어진다. 그동안 자신도 모르게 가족, 특히 아기에게 병을 옮기는 것이다. 실제로 영·유아의 백일해 주요 감염경로는 부모·형제 등 가족 구성원이 4분의 3을 차지하고, 아기를 자주 접하는 직종 종사자들이 그 뒤를 잇는다.

현재 대한소아청소년과 개원의사회에서는 의사·간호사들이 먼저 추가 접종을 받음으로써 병원을 방문한 영·유아와 그 가족들의 백일해 감염 위험을 차단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번 캠페인이 가정과 의료진은 물론, 정부 관계자들이 백일해 예방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돼 어른들로 인해 백일해에 감염되는 영·유아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길 바란다.

임수흠 대한소아청소년과 개원의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