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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러 수교 20주년과 양국 관계의 현주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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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런 맥락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동시에 한반도 문제에 대한 개입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던 중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그 기회를 제공했다. 그런데 6자회담에서 러시아는 주요 행위자로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해 왔다. 그간의 공백기와 국력감소에 따른 외교력 한계를 절감해야 했다. 그럼에도 러시아 측 관계자들은 6자회담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몇 가지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첫째, 6자회담의 성공과 운명이 미국과 북한 두 핵심 당사국의 태도 여하에 달려 있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나머지 국가는 부차적인 역할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현실주의적인 판단이다. 중국의 중재적 역할도 대수롭게 보지 않았다. 국제사회의 협력도 통한 북한의 비핵화를 지지한다는 주장을 빼놓지 않았다.

둘째, 6자회담으로는 북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므로 장기적으로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안보메커니즘을 구축해 나갈 필요가 있음을 역설했다. 북핵 문제는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을 통해서만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북핵 문제보다는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이슈 안에서 러시아의 역할 공간을 넓힐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현재의 6자회담 틀로는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기 어렵다는 전략적 사고의 일단을 비친 것이기도 하다.

북핵 문제 해결을 둘러싼 한국과 러시아의 입장은 총론적으로는 다르지 않으나 각론적으로 다소 차이를 보인다. 러시아는 6자회담에서 한국의 역할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북한의 비핵화를 장기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이런 각론적 차이는 한·러 수교 20주년을 맞이해 한·러 관계를 강화하는 노력을 통해 좁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천안함 사건과 관련, 러시아 정부의 핵심 관계자는 북한의 소행으로 확인될 경우 물리적 대응은 오히려 북한의 내부 결속을 도와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과거 아웅산 테러사건, KAL기 폭파사건 당시처럼 인내심을 갖고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특히 유엔 안보리 회부 등 국제협력을 통한 해결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는 조언은 러시아의 적극 참여를 시사하는 것이어서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임경묵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