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원자력기구 대북 3단계 사찰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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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한에 통보한 핵시설 사찰 방안은 북한의 과거 핵활동 규명을 위한 마스터플랜으로 평가된다. 내용이 방대하며 핵시설 전반에 걸친 사찰 계획이 망라돼 있다.

핵 개발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IRT-2000 원자로 등 미동결 시설까지 들여다보겠다는 데서 IAEA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IAEA의 이번 사찰 계획이 의미를 갖는 것은 북한 핵사찰의 시급성에 기인한다. 1994년 제네바 합의에 따르면 북한은 경수로의 핵심부품(원자로 등)이 인도되기 전에 IAEA의 특별사찰을 받도록 돼 있다.

경수로 핵심 부품은 현재의 공사 진척도로 볼 때 2004년 중반께 이뤄지지만 사찰이 3~4년 걸리는 만큼 내년에는 사찰이 개시돼야 한다는 것이 IAEA의 입장이다.

여기에 미국이 북한 핵 검증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는 점도 사찰 계획에 무게를 더해준다. 이 계획의 요체는 북한이 92년 핵물질 및 시설의 목록을 담아 제출한 '최초 보고서'와 IAEA 임시 사찰 내용간의 불일치를 규명하는 것이다.

북한은 당시 5㎿ 원자로의 사용 후 연료봉으로부터 한차례에 걸쳐 90g의 플루토늄을 추출했다고 했다. 그러나 IAEA는 여섯차례에 걸친 임시 사찰에서 북한이 세차례에 걸쳐 적어도 ㎏ 단위의 플루토늄을 추출한 것으로 추정했다.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와 뒤이은 제네바 합의로 묻혔던 이 불일치를 규명하는 것이 내년 IAEA 사찰의 목표인 셈이다.5㎿ 원자로 연료봉의 방사능 측정과 핵 폐기물 처리장의 사찰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북한은 그러나 과거핵 규명과 관련해선 여전히 부정적 입장이다. 지난달 과거핵과 직접 관련이 없는 동위원소 생산실험실에 대한 IAEA의 방문은 허용했지만 사용 후 핵연료봉 방사능 측정에는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또 미국.IAEA의 조기 핵사찰 요구에 대해 경수로 건설 지연에 따른 전력 보상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북한.IAEA의 이같은 입장으로 미뤄 내년엔 핵사찰을 둘러싼 공방이 불가피하고, 그 과정에서 자칫 위기가 조성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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