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중국 경제 대장정] 선전으로 몰려가는 홍콩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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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홍콩시 선전구'냐 '선전시 홍콩구'냐. 개방 20여년을 맞은 선전시가 홍콩마저 집어삼킬 기세다. 선전으로 집을 옮기거나 장을 보기 위해 선전행 기차를 타는 홍콩인의 모습은 이제 전혀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개방 초 홍콩기업의 위탁생산을 도맡아 '홍콩시 선전구'로 불리던 선전시가 대약진을 거듭한 결과, 홍콩 뺨치게 살기 좋은 도시가 됐기 때문이다. 홍콩인들 사이에서까지 '선전시 홍콩구'란 자조 섞인 얘기가 나돌 정도다.

선전~홍콩을 잇는 중국 본토의 마지막 기차역인 뤄후(羅湖)역 1층에 있는 큰 슈퍼마켓은 언제나 쇼핑객들로 북적댄다. 대부분이 홍콩에서 장을 보러 기차를 타고 넘어온 사람들이다. 뤄후역엔 이들을 겨냥한 과일.생선가게며 구두수선집 등이 즐비하다.

금요일 저녁이면 홍콩~선전간 출입관리소에는 선전으로 넘어가려는 홍콩의 '오렌지족'과 회사원들로 북적거린다. 홍콩에서 쓰는 술값의 20~30% 정도면 선전에서 어느 나라 왕족 부럽지 않은 파티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선전의 밤거리는 이들을 겨냥한 유흥업소들의 네온사인이 불야성을 이룬다.

지난해 이렇게 당일치기로 선전을 찾은 홍콩인이 연 1천만명에 달했다. 홍콩소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주민은 매일 평균 1억홍콩달러(약 1백60억원)어치씩 선전에서 장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홍콩주민의 선전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홍콩사람들이 선전에서 산 집은 7천채다. 사들이는 집도 과거처럼 가난한 홍콩인들이 선전시 외곽에 허름한 주택을 구입한 것과는 딴판이다. 홍콩 부자들이 시내 중심지인 푸톈취(福田區).뤄후취(羅湖區)의 호화주택들을 대거 사들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선전시의 열성적인 '홍콩인 유치전략'도 한몫했다. 시는 홍콩인이 선전에 사는 데 불편이 없도록 하겠다며 주택구매제도.교통여건.체류기간개선.환경구축.문화적 분위기 조성 등을 위해 별도의 위원회까지 만들었다.

홍콩 교재를 사용해 영어로 수업하는 홍콩인 자녀용 학교도 앞으로 5년 안에 구별로 한개 이상 짓기로 했다. 현재는 바오안취(寶安區)에 한개밖에 없어 2천9백여명의 홍콩 학생들이 매일 국경을 넘어 학교를 다니고 있는 불편을 말끔히 없애주겠다는 것이다. 싱가포르의 선진의술을 도입한 국제적인 병원도 곧 개원할 예정이다. 중국의 의료수준에 의심을 가진 홍콩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다.

이런 선전의 전방위 공세에 속수무책인 홍콩의 소매업자들은 "선전의 슈퍼마켓과 경쟁하려면 가격을 90% 이상 내려야 한다"며 난감해한다. 최근 홍콩의 대형 슈퍼체인 몇개가 영업난을 견디지 못해 문을 닫은 것도 업계에서는 이른바 '선전효과' 때문으로 분석한다.

홍콩당국도 뾰족한 수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홍콩~선전을 오가려면 1백m 사이에 홍콩.중국의 입출경관리소 두개를 거쳐야 하는 불편 때문에 중국은 통합운영을 제안했다. 그러나 홍콩은 이를 거절했다. 통행 개방시간도 24시간으로 하자는 중국에 맞서 오전6시~오후 11시를 고수중이다. 대신 중국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의 휴대품 검사를 강화하고 있다.

홍콩인들의 중국행을 조금이라도 어렵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당국의 노력도 아랑곳 않고 홍콩에서 선전으로 건너가는 열차와 배는 여전히 홍콩인들로 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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