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1년 됐는데 “그린푸드 존이 뭐죠”…학교 앞에서 햄버거 버젓이 팔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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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교문 옆에는 ‘그린푸드 존(greenfood zone)’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학교 주변 200m 이내에서 비만과 영양 불균형을 유발할 식품들을 추방하겠다는 취지로 지정한 어린이식품안전보호구역이다. 지난해 5월부터 시행됐다. 특히 이 안에서 우수판매업소로 지정되면 햄버거·컵라면·초콜릿 등의 판매가 금지된다. 하지만 주변 상황은 팻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튀김·라면에 햄버거까지 온갖 식품이 별 제약 없이 팔리고 있었다. 게다가 주변 19개 식당과 음료점 중 우수판매업소는 한 곳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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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분식점에서는 비만 체형인 4학년 김모군이 튀김 한 접시를 비우고 있었다. 김군은 “학교 급식으로는 양이 차지 않아 방과후에는 간식을 꼭 먹는다”며 “주문할 때 열량 같은 건 신경 안 쓴다”고 말했다.

더블딜럭스버거 기준 190g당 599㎉, 어린이식품 중 식사대용품의 고열량·저영양식품 기준인 500㎉ 초과

주변 편의점에서 만난 6학년 배모군은 ‘더블딜럭스버거’를 먹고 있었다. 포장지에 적힌 1회 제공량(190g)당 열량은 599㎉. 어린이식품 중 식사 대용품의 고열량·저영양 기준인 500㎉를 초과했다. 배군은 앞서 점심 급식까지 먹은 터라 이날 낮에만 권장량(한 끼당 700㎉)을 훌쩍 넘는 1200㎉ 이상을 섭취한 셈이다.

유일한 우수판매업소인 ‘신포우리만두’ 관계자는 “한 달 전쯤 구청 직원이 우수판매업소에 가입하라고 권유해 등록했다”며 “사실 우수판매업소가 뭔지 잘 모른다”고 말했다. 서울시 소비자식품위생감시원인 이길화씨는 “우수판매업소에서 팔 수 없는 식품은 햄버거·초콜릿 등”이라며 “만두가게를 우수판매업소로 지정한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다른 학교 주변도 비슷했다. 서울 종로구의 혜화초등학교 앞 그린푸드 존에는 식품·음식 판매업소가 14곳이다. 하지만 우수판매업소는 한 곳도 없었다. 한 가게에서는 엿·콜라맛 사탕 등 색깔이 현란한 100∼500원짜리 저가 식품을 팔고 있었다. 2학년인 장모군은 “달고나와 슬러시가 맛있어 자주 찾는다”며 “먹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중앙일보와 소비자단체인 ‘소비자시민모임’이 그린푸드 존 시행 1년을 맞아 서울시내 초등학교 9곳을 점검한 결과 그린푸드 존 내 식품 판매업소 123개 중 우수판매업소는 5곳에 불과했다. 그것도 현행 어린이식생활안전관리특별법상 판매에 제약이 없는 김밥·떡볶이 등을 취급하는 분식점들뿐이었다. 그린푸드 존의 취지를 제대로 살린 곳이 하나도 없는 셈이었다. 전국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아 전국 초·중·고 1만1000여 개 주변 그린푸드 존의 우수판매업소는 306곳뿐이다.

소비자시민모임의 김자혜 사무총장은 “그린푸드 존 제도가 별 효과도 없는 우수판매업소 지정에만 매달리다 보니 정작 어린이 비만 예방에는 거의 기여를 못한다”며 “특히 홍보 부족 탓에 제도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총장은 “채소·과일·생선 등 건강에 좋고 성장에도 도움이 되는 음식을 먹도록 하는 그린푸드 교육도 너무 부실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11일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6학년생 133명에게 ‘그린푸드 존을 아느냐’고 물어본 결과 13명(9.7%)만이 ‘안다’고 답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영양사인 한모씨도 “그린푸드 존은 들어봤지만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고 말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그린푸드 존(greenfood zone)=어린이식품안전보호구역. 초·중·고 주변 200m 이내에서 부정·불량 식품과 정서 저해 식품 판매를 금지해 어린이 비만, 영양 불균형을 막겠다는 취지로 지난해 5월 도입했다. 그린푸드존 내 학교 매점과 우수판매업소로 지정된 업소는 고열량·저영양 식품을 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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