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피아’ 낙하산 감사 막는다더니 또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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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금융감독원 출신 퇴직자들이 보험·증권업체 같은 금융회사의 감사나 감사위원으로 가는 ‘낙하산 관행’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은 지난해 11월 현직 직원들이 금융회사 감사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대책을 내놨지만 이번 주총 시즌에서도 금감원 출신이 금융회사 감사로 가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삼성화재는 최근 이사회를 열어 신임 감사위원으로 이재식 전 금융감독원 회계감독1국장을 선임하고 다음 달 1일 열리는 주총에서 이를 승인받기로 했다. 동양생명의 신임 감사로는 김상규 전 보험검사2국 부국장이 내정됐다. 보험감독원 출신인 노승방 전 금감원 연구위원은 메리츠화재의 신임 감사로 내정됐다.

증권·자산운용업계도 마찬가지다. 이철종 전 금감원 연구위원이 KB자산운용의 감사로, 금감원 출신인 권정국 전 동양선물 감사는 동양종금증권의 새 감사로 내정됐다. 미래에셋증권은 최근 이사회에서 2008년 선임된 금감원 출신 이광섭 감사위원의 연임을 결정하고 주총 승인을 앞두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해 11월 17일 “금감원 출신 인사들이 금융회사 감사를 독식하고 있다”는 본지 보도가 나오자 ‘재취업 관련 향후 운영 방안’을 발표했다. 만 54세가 되는 부서장을 일괄 보직 해임하는 제도를 없애 금융회사 감사로 나가는 수요를 줄이고, 투명한 감사 선임을 위해 금융회사에 감사 공모제 도입을 권고하기로 했다. 또 금감원 출신 감사와 직원들의 유착을 막을 수 있는 내부 통제 장치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감사 공모제의 효과는 별로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감사를 공모했다고 밝힌 한 보험회사의 경우 언론 등이 아닌 회사 홈페이지에 일주일간 안내를 했고, 감사로 내정된 금감원 출신 인사 1명만이 신청을 했다.

학계 등에선 금감원 출신 감사가 부임하면 금융회사에 대한 금감원의 감독과 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금융회사들이 금감원 출신의 감사를 선임하는 것은 이들의 전문성을 활용하기보다는 대부분 검사나 감독에 대비해 금감원과 연결할 수 있는 소통 창구를 마련한다는 차원에서다.

동국대 강경훈(경영학) 교수는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큰 대형 금융회사의 경우 감독과 검사를 제대로 한다는 차원에서 금감원 출신이 감사로 가는 것을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감원은 다른 입장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감독 당국 출신이 금융회사에 재취업하는 것을 막기보다는 부당한 압력 행사를 막는 쪽으로 규제를 한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공직자윤리법에 따른 심사를 받고 감사로 나가는 것을 제한할 방법은 없다고 한다.

또 이번 주총을 계기로 보험·증권사 감사의 출신이 다양화할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삼성생명과 KB생명은 감사원 출신을 새 감사로 내정됐고, 미래에셋생명은 한국은행 출신을 감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금감원 조효제 인사팀장은 “올해 부서장의 일괄 보직해임 제도를 폐지한 만큼 금융회사 감사로 가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라며 “감사로 나간 퇴직 직원들과 현직 직원들의 부당한 접촉을 막기 위한 행동 강령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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