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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재계에 부는 모바일 오피스 도입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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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모바일 오피스 도입 이후 도시철도공사 직원들은 스마트 폰을 이용해 모든 시설물을 점검·관리하고 있다. 직원들이 교통카드 발매기 상태를 체크하고 있다. [김도훈 인턴기자]

도시철도공사 한강진관리소의 김태우(45) 선임주임은 지난 1월부터 일하는 방식이 확 달라졌다. 우선 출근 장소가 바뀌었다. 사무실이 있는 한강진관리소가 아닌 담당 역사인 지하철 6호선 청구역으로 바로 나간다. 점검·보수에 대한 지시는 스마트폰으로 출근 도중 확인한다. 청구역 역사의 시설물 점검 보고도 사무실로 오지 않고 현장에서 바로 한다. 스마트폰에 점검 결과를 입력하면 그만이다. 고장 신고를 하기 위해 본부에 전화를 걸어 장황하게 설명할 일도 없다. 고장 난 시설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입력하면 본부에 접수된다. 모두가 스마트폰을 활용한 ‘모바일 오피스’ 도입 후 달라진 풍경이다. 공사는 1월 초 모바일 오피스를 전면 도입하고 6500여 명 직원 전원에게 스마트폰을 지급했다. 

도시철도공사뿐이 아니다. 삼성SDS(정보기술기업), 포스코(대형제조업체), 삼성증권(금융회사), 녹십자(제약회사), 한림대병원 등이 이미 모바일 오피스를 가동 중이다. 코오롱그룹은 지난 1월부터 그룹 전 계열사에 모바일 오피스를 도입하고 있다. SK그룹은 이달 SK텔레콤을 시작으로 연내 전 계열사에 모바일 오피스를 도입할 계획이다.

‘움직이는 사무실’, 모바일 오피스 바람은 업종·영역을 가리지 않고 확대 일로다. 삼성경제연구소의 SERI CEO 회원 44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명 중 8명(81.2%)이 “향후 3년 내에 기업 업무 환경이 모바일 중심으로 바뀔 것”이라고 대답했다. 10명 중 7명(71.4%)은 모바일 오피스를 도입했거나, 도입 중이거나, 3년 내에 도입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KT경제경영연구소는 국내 모바일 오피스 시장 규모가 2009년 2조9000억원에서 2014년 5조9000억원으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현장이 사무실=모바일 오피스는 ‘일은 사무실에서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면서 제2의 ‘IT 혁명’을 촉발하고 있다. 삼성SDS는 지난해 6월 모바일 오피스를 본격 도입했다. 스마트폰에 회사 업무시스템이 고스란히 담겼다. 임직원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회사 밖에서도 e-메일 조회, 결재, 일정 확인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이 회사 김동광 과장에겐 출퇴근 버스인 1560번 광역버스가 사무실 역할을 한다. 김 과장은 “버스 안에서 수시로 파트너들과 e-메일을 주고받으며 프로젝트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지난해 간부 300여 명에게 스마트폰을 지급한 데 이어 지난 3월 영업부서 직원 등 700여 명에게 스마트폰을 나눠줬다. 정준양 회장이 강조하는 ‘뛰는 포스코’에 걸맞게 현장을 찾아 고객 요구에 신속하게 대응하라는 취지다. 냉연마케팅실 박승현 대리는 “모바일 오피스 도입 이후 출하·판매·생산 조회가 언제 어디서든 가능해졌다”면서 “사무실 밖에 나가서도 정상적인 업무 처리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부터 모바일 오피스를 가동 중인 아모레퍼시픽도 영업 사원들의 호평에 고무돼 있다. 사무실을 지켜야 하는 부담이 줄어들면서 업무 반경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방판직영 영업팀 박현웅씨는 매장으로 바로 출근하는 날이 많아졌다. 사무실에 나가지 않고도 판매 추이와 재고 등에 대한 조회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박씨는 “매장 직원과 이야기 도중 추가제품이 필요하면 스마트폰의 메신저 기능을 활용해 바로 제품 주문을 낸다”고 말했다.

◆조직 문화까지 바꿔=모바일 오피스는 기업들의 조직문화도 바꿔놓고 있다. 모바일 오피스에서 업무에 대한 보고와 지시가 가능해지면서 권위주의 냄새가 풍기는 대면 업무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 현장에서 이구동성으로 꼽는 장점은 결재가 빨라졌다는 사실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서류를 들고 가서 결재권자가 돌아오길 기다려야 하는 것은 옛날 얘기가 됐다”면서 “상사가 외부에 있더라도 바로 결재를 해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삼성SDS는 최고경영진까지 스마트폰을 활용한 결재가 보편화돼 있다. 김인 사장은 이동 중 스마트폰을 활용해 e-메일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도시철도공사는 시설 점검이 실시간으로 가능해지면서 점검 업무 한 건당 소요되는 시간이 평균 1시간에서 28분으로 줄었다. 대신 기기 점검을 더 꼼꼼하게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면서 고장률은 큰 폭으로 떨어졌다. 도시철도공사 맹성용 기술분석팀장은 “실시간 점검과 보수 시간의 증가로 4월 장해 발생건수가 1년 전보다 46% 줄었다”면서 “목표치인 50% 감소에 근접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고장 방지를 통한 안전운행으로 3242억원의 사회적 이익이 생길 것으로 추정된다.

◆전망=모바일 오피스 확산은 근로 형태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정해진 시간에 사무실에 앉아 있을 필요가 없으면 재택근무·자율 출퇴근 등 여러 형태의 ‘유연근로’가 가능해진다. 한국IBM 등 일부 회사는 현재 스마트폰 지급 없이도 영업직엔 탄력적 시간근무를 허용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지급되면 유연근무제가 확산될 여지가 더 많다는 얘기다. KT경제경영연구소는 “모바일 오피스 확산은 구직이 어려운 여성 실업자들에게 새로운 취업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경제 전체의 효율성도 크게 높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정보화진흥원 분석에 따르면 전체 사무직 취업자가 주 1회 원격 근무만 해도 1조6000억원의 출퇴근 비용 감소 효과가 있다.

문제도 있다. 모바일 오피스는 초기 구축 비용이 많이 든다. 중소기업에는 큰 부담이다. 이로 인해 기업들의 ‘디지털 격차’가 더 확대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세대간 ‘스마트폰 갭’이 생겨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스마트폰 사용이 서툰 경우엔 모바일 오피스가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삼성SDS 관계자는 “스마트폰에 대한 충분한 교육이 있어야 모바일 오피스가 성공적으로 정착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글=이상렬·김기환 기자
사진=김도훈 인턴기자

◆모바일 오피스(mobile office)=이동통신기기로 사내 컴퓨터 네트워크에 접속해 외부에서 회사 업무를 처리하는 시스템.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업무 처리가 가능해 효율성을 높일 수 있고, 재택근무 등 새로운 형태의 근무방식도 적용할 수 있다. 예전에도 무선인터넷과 노트북 컴퓨터를 활용한 모바일 오피스가 시범적으로 운영됐으나 최근에는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모바일 오피스 구축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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