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정책은 경제학자가 하는 게 아니다.”
17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린 팔순 기념문집 간행 및 봉정식에 참석한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 부부. [조용철 기자]
저명한 경제학자이면서 경제부총리와 한은 총재를 두루 역임했던 그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조 명예교수가 2005년 발표한 ‘한국의 경제학 연구’라는 글을 보면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그는 “경제학은 아무리 노력해도 엄밀과학 혹은 순수과학이 될 수 없고, 또 그런 노력을 할수록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물리학·수학의 방법론을 배우려고 경제학이 엄청나게 노력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경제학은 자연과학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노교수는 요즘 경제학계에 대한 소회도 밝혔다. 금융위기를 예견하는 데 실패했다는 이유로 경제학자들이 ‘기합받는 분위기’로 몰리는 걸 보니 기분이 별로 안 좋다고 했다. 영미 경제학자들이 위기의 징후를 파악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 것으로 믿는다고도 했다.
이날 발간된 문집 『이 시대의 희망과 현실』은 조 명예교수가 정치 활동을 접고 난 뒤 쓴 글과 어록을 모은 것이다. 고(故) 박정희 대통령에게 경제 발전에 대한 전략을 보고하려고 만들었다가 10·26 사건으로 미공개 보고서가 돼 버린 ‘중·장기 개발 전략에 관한 연구’도 이번에 함께 별집으로 간행됐다. 이 보고서는 정부의 역할을 민간의 경제 활동을 간여하고 통제하는 게 아니라 ‘경기 규칙’을 정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정부가 한창 시장을 쥐고 흔들었던 1979년에 나온 보고서다.
문집에서는 화끈한 혹은 조급한 우리의 국민 정서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 나라는 나이를 먹고 몸집도 커졌지만 이에 부합하는 성숙성이 없다. 국민의 정서에는 집단적이고 미성숙한 역동성은 있으나 성숙한 개인주의적 합리성은 적다.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경제 정책만으로 이뤄질 수는 없는 단계에 와 있다. 조급한 마음을 접고, 한꺼번에 선진국이 될 생각을 버려야 한다.”(2006년 강연)
한국 경제의 문제점을 지적한 2004년 연설에선 국론 분열을 우려했다.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모든 부문의 제도적 골격(institution)이 기능 장애를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거의 모든 문제에 걸쳐 국론이 분열돼 이른바 단일 민족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다. 새뮤얼 헌팅턴이 말한 이른바 분열된 나라(torn country)의 양상이 나타나면서 나라의 정체성을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글=서경호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