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이창호-이세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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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이세돌의 비관론과 흑121의 모순

제6보 (108~122)=李9단이 108에 패를 쓰자 李3단은 불청하고 109로 빵때려냈다. 이것으로 흑은 우변에 60집의 확정가를 만들었다.

검토실의 안달훈4단.박정상2단 등 신예기사들은 "실리에서 흑이 앞섰다. 백의 좌변 공격이 변수지만 흑이 약간 좋아보인다"고 말했다. 서능욱9단이나 홍태선8단도 "미세하지만 흑이 좋지 않을까"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당사자인 이세돌3단 만은 자신이 매우 불리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흑은 집으로는 앞섰으나 전체적으로 엷다. 이것이 李3단의 비관론 근거다. 하지만 약간 엷지만 집은 좋다고 낙관할 수도 있는 장면에서 李3단은 왜 그토록 비관에 빠져들었을까.

121도 논리적으론 이해하기 어려운 한 수였다. 113부터 두점을 사석으로 해 119까지 모양을 잡은 것은 좋은 수순. 바로 이 장면에서 李3단이 형세를 비관했다면 '왜 한가하게 121로 가일수했느냐'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사실 흑121은 급하지 않다. 그보다는 흑1로 백△ 두점을 선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백이 A로 끊으면 3으로 돌려치면 그만이다.

백△ 두점을 잡을 수는 없겠지만 이곳을 선수로 정리하고 반상 최대의 B를 차지한다면 흑은 이 판을 이길 수 있다. 평소 씩씩하고 날렵한 李3단은 왜 이같은 기민한 수순 대신 느릿한 121을 택했을까.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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