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얼로 풀고 죄고 … 끈 없어 신고 벗기 편한 신발이 경쟁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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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륵”

신발 오른쪽에 달려 있는 둥근 다이얼을 시계방향으로 돌리면 와이어가 조여지고 반대로 돌리면 풀린다. 끈 없는 신발이다. 스노 보드화와 스키 부츠화에서 처음 적용된 이 기술은 추운 날씨에도 재빨리 신고 벗을 수 있어서 인기를 끌고 있다. 누구든지 스키장에서 스키 부츠 끈을 대신 묶어 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제품이 끈 없는 신발이다.

끈을 조이고 푸는 다이얼을 포함한 부품 일체를 ‘보아’(Boa)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이 장치를 개발한 보아 테크놀로지 게리 해멀스 래그(55) 대표를 부산시 강서구 송정동 ㈜트렉스타 회의실에서 만났다. 게리 해멀스 래그는 트렉스타 권동칠 사장과 보아 시스템을 확대하는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방한했다.

보아 테크놀로지 게리 해멀스 래그(55) 대표가 보아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3년 만에 개발에 성공해 스노보드화에 처음 장착했다. [송봉근 기자]

청바지 차림의 그는 보아 시스템이 들어 있는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왔다. 보아 시스템 하나로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자신감이 묻어나는 듯했다.

-간단하지만 편리한 시스템인데 어떻게 개발하게 됐나.

“18년 동안 아버지와 의료장비 사업을 했다. 심장수술 할 때 사용하는 가느다란 와이어를 이용한 의료기기를 개발해 병원에 공급했다. 콜로라도로 이사한 뒤에는 스키타운에서 일을 했다. 어린아이들이 스키화를 신고 벗을 때 끈 때문에 애먹는 것을 보고 와이어를 이용하면 되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1998년에 시제품을 만들어 스노 부츠와 스노 보드화에 적용했더니 반응이 좋았다. 처음에는 다른 신발에 적용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으나 차츰 대상을 넓혔다. ㈜트렉스타가 스키 신발이 아닌 등산화와 일반 신발에 보아 시스템을 처음으로 적용해 성공하는 것을 보고 다른 신발에 적용해도 된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개발하는 데 얼마나 걸렸나.

“98년 개발에 들어가 시제품을 만드는 데 3년이 걸렸다. 2001년에 보아가 장착된 스노 보드화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와이어와 특수 플라스틱으로 된 연결부가 최적의 상태로 유연하게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어려웠다. 와이어와 연결 부위가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데 수많은 실험이 필요했다.”

-와이어 연결 부위의 플라스틱을 마모시키지 않는가. 내구성이 문제인데.

“아주 중요한 문제다. 간단해 보이는 보아 시스템이지만 의료장비 기술이 적용됐다. 신발이 다 닳아 버릴 때까지 보아 시스템은 훼손되지 않는다. 우리의 자신감이고 자랑이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장비 사업을 할 때 익힌 신용으로 보아 시스템을 만들었다. 골프·사이클·스노 보드 선수들이 우리 제품 신발을 신고 테스트하고 있다. 전 세계 주요 스포츠 현장에서 우리 제품이 인정받고 있다. 보아 제품 신발을 신은 스포츠 선수들이 우승을 많이 한다. 소비자들이 내구성을 확신 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기다릴 자신이 있다.”

-기술의 핵심인 와이어 장력이 어느 정도인가.

“보아 시스템에 사용하는 와이어는 신발을 신고 움직일 때 무리하지 않을 정도의 장력이 필요하다. 갑자기 강력한 힘을 주고 확 당겼을 때 장력은 측정해 보지 않았다. 발을 편하게 조이면서 움직이는 데 불편하지 않는 장력을 유지하는 것이 와이어 기술의 생명이다.”

-한국에 보아 유사품이 나돌고 있는데.

“부산의 백화점에서 유사품이 장착된 등산화를 봤다. 유사품을 이기는 길은 제품을 더 잘 만드는 길뿐이라고 생각한다. 품질이 뛰어난 보아는 유사 제품을 이길 자신이 있다. 한국의 소비자들이 신어보고 긍정적으로 판단해 줄 것으로 믿는다. 법적 대응에 대해서는 ‘노 코멘트’하겠다.”

-보아 시스템이 적용된 신발 값이 비싼 것이 흠이다. 가격을 낮출 방안은.

“빨리 신발을 신고 벗을 수 있는 편리함이 조금 비싼 가격을 상쇄할 수 있다고 본다. 조금 비싸도 편리한 제품을 구입하려는 소비자를 겨냥한 제품이다. 보아 시스템이 부착되면 신발 가치가 오르는 ‘프리미엄 브랜드’에만 부착한다. 값싼 신발과 경쟁하지 않겠다.

-파트너로 트렉스타를 어떻게 생각하나.

“신뢰할 만한 좋은 파트너다. 넘치는 아이디어로 보아 시스템의 기술 개발을 이끌어 주고 있다. 트렉스타를 만난 것은 행운이다.”

사진=송봉근 기자



지름 0.1㎜ 안에 와이어 49줄이 새끼처럼 꼬여
어떻게 만들어졌나

보아 시스템은 와이어와 특수플라스틱으로 된 연결 부위, 다이얼 조임장치 등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와이어는 지름 0.1㎜ 안에 49줄이 새끼처럼 꼬여 있어 튼튼하다.


와이어는 신발 종류에 따라 다르다. 스노 부츠에는 튼튼한 고품질 스테인리스 와이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등산화나 일반 신발에는 부드러운 와이어를 사용한다. 부드러운 와이어는 겉에 매끄럽고 부드러운 폴리머(polymer) 소재를 입혔다. 때문에 일부러 펜치를 사용하지 않는 한 아무리 과격한 운동을 해도 끊어지는 일이 없다고 한다. 트렉스타는 보아 테크놀로지와 공동으로 이 와이어를 개발하는 데 1년이 걸렸다. 조임 장치에도 5∼6개의 부품이 들어갈 정도로 정교하다.

1999년 처음으로 해멀스 래그가 개발했을 때는 겨울철에 신고 벗기 힘든 스노 보드 부츠에 적용했다.

첫 제품이 나오자 끈도 없이 부츠 전체를 유연하게 조이는 신기한 제품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처음에는 일부 제품에 제한적으로 적용됐으나 갈수록 적용 제품을 늘려갔다. 스노 보드 부츠에 처음 적용했을 때 전 세계 스노 보드화의 30%가 보아를 장착할 정도였다

지금은 노스페이스·풋조이 등 세계 70여 개 신발 브랜드(25종)가 보아 시스템을 장착한 신발을 생산하고 있다. 우리나라 트렉스타는 전문등산화에 이 시스템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적용했다.

보아 테크놀로지가 급신장하던 트렉스타를 찾아와 이 시스템을 적용해 볼 것을 권유했고, 트렉스타가 보아 시스템에 맞는 등산화를 따로 개발해 적용하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트렉스타는 코브라 목처럼 신발 전체가 벌어지고 조여지는 신발을 따로 만들어 이 보아 시스템을 적용했다. 다이얼로 와이어를 풀면 신발에 손대지 않고 벗을 수 있다.

보아 테크놀로지 본사는 미국 콜로라도주에 있다. 회사가 해발 2200m 지점의 산악도시에 자리 잡고 있다. 산악 지역이어서 하이킹·스노 보드·스키 부츠·트레킹화 등을 성능 시험하기 좋은 곳이다. 일본 지바현·홍콩 등에 지사를 두고 있다. 전체 종업원은 40여 명이며 35명이 미국에 근무하고 있다. 10명의 직원이 안전성과 내구성을 테스트하는 연구개발요원이다.



스노 부츠서 시작 … 사이클·골프화 이어 전투화까지
적용 제품 어떤 게 있나

그동안 등산화는 고리에 꿴 끈을 하나씩 잡아당긴 다음 맨 위에서 매듭을 지어 매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끈이 문제다. 신발 끈이 풀어진 줄 모른 채 다른 발로 그 신발 끈을 밟은 상태로 발걸음을 옮기다가는 걸려 넘어진다. 하지만 보아 시스템이 장착된 신발은 이러한 걱정에서 벗어나게 한다.

뿐만 아니라 구부려 신발 끈을 조절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유용하다. 예를 들어 신발을 벗고 드나드는 식당에서 윗사람을 모실 때는 행동을 빨리 해야 한다. 비행기 안에서도 신발 끈을 만지기가 부자연 스럽다.

보아 시스템이 장착된 신발들.

트렉스타는 보아 시스템이 장착된 신발은 안창도 특수개발된 이탈리아제 소재를 사용한다. 오랫동안 사용하면 안창 재질이 얇아져 발바닥이 아프고 피로해지지만 보아 시스템이 장착된 신발은 탄성과 복원력이 뛰어나 신발 바닥이 꺼지는 일이 거의 없다. 트렉스타는 ‘코브라 530’ 모델 등 보아 시스템을 장착한 차별화된 신발시장을 이끌고 있다. 코브라 530은 보아 시스템의 와이어 끈과 신발 양쪽을 네 손가락으로 움켜쥔 것 같은 형상으로 덧댄 천이 발 전체를 편안히 감싸도록 디자인됐다.

스노 부츠와 스키화에서 시작된 보아 시스템은 진화하고 있다. 2005년에는 사이클화에 적용됐고 2006년에는 골프화에 부착됐다. 2007년에는 일본시장에 진출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보아 시스템 부착한 신발이 전세계에서 2005년 100만 켤레, 2007년 200만 켤레, 2008년 300만 켤레, 2009년 500만 켤레로 가파르게 늘어났다. 보아 테크놀로지 측은 올해는 700만 켤레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와이어를 조이는 다이얼 위치를 골프화의 경우 뒤쪽에 부착하는 등 꾸준히 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트렉스타는 보아 시스템을 장착한 전투화까지 납품하고 있다. 끈 없는 전투화가 전투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미국·일본·스페인 군 관계자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을 정도다. 이 전투화는 군인들의 행군을 즐겁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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