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최하림 '독신의 아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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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잔치는 끝났다

하객도 돌아간 지 이미 오래다

이제 남은 일은

열어젖힌 문들의 빗장을 꽂고

방방이 등불을 끄는 일이다

이럴 때 헷세는

돌아가 쉴 안식의 기쁨을 노래했지만

나는 불을 끈 저편의 어둠이 무섭다

어디든 마지막 등불 하나

켜두고 싶다

(중략)

그때는 그렇게

날마다 산불같이 번져가던 불

끄지 못해 온 살 태우며 목 마르더니

오늘은 그 불꽃 그리워

잠을 잃는다

-홍윤숙(1925~ ) '불 -놀이 36'중에서

어머니, 죄송해요. 자주 찾아가 뵙지도 못하고 전화도 못드려서요. 오늘은 차가운 저녁 길을 바삐 가다보니 어머니 창가에 늦도록 등불 하나 꺼지지 않고 그 아래 깊어지는 어둠을 퍼 올리고 있네요. 날씨도 추워지는데 감기 드시지 않도록 잘 단속하시고 편안한 잠 청하셔서 밝은 아침을 맞으세요.

김화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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