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흘렀지만 … “영원히 잊지 않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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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다 가쓰야 일본 외상이 15일 오후 부산시립공원묘지에 있는 고 이수현씨 묘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씨의 아버지 이성대씨와 어머니 신윤찬씨. 이씨는 2001년 1월 일본 유학 중 도쿄의 한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고 숨졌다. [연합뉴스]

“일본 국민은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오카다 가쓰야(岡田 克也) 일본 외상은 시종 숙연했다. 벌써 10년 가까이 된 일이지만 어제의 일처럼 고인의 넋을 위로하고 슬퍼했다.

오카다 외상이 15일 오후 부산시립공원묘지(영락공원)에 있는 고 이수현씨 묘를 찾았을 때 얘기다. 그는 묘소에 헌화하며 한참 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는 1박2일 일정으로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제4차 한·중·일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하는 길에 별도로 시간을 내 의인 이씨의 묘를 참배했다.

영락공원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이씨의 부모는 “아들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됐는데 잊지 않고 찾아줘 감사하다”고 말했고 오카다 외상은 “일본 국민은 이수현씨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며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는 이어 영락공원에 있는 태평양전쟁희생자 위령비를 찾아 헌화하고 경주로 향했다.

이씨는 2001년 1월 도쿄 신주쿠(新宿)구 JR신오쿠보(新大久保)역에서 만취해 철로에 떨어진 사카모토 세이코(坂本成晃·37)를 구하고 자신은 전철에 치여 숨졌다. 당시 일본어학교에 다니던 그는 신오쿠보역 부근 인터넷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귀가하던 중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일본인을 구하고 숨진 청년이 한국인이란 사실에 당시 일본 사회는 충격과 함께 큰 감동을 받았다.

이씨가 숨진 신오쿠보역에서는 해마다 한·일 합동 추모행사가 열려 왔다. 한·일 학계·사회 문화계 인사 50여 명은 2003년 말 이수현 추모사업실행위원회를 발족해 다양한 추모사업을 벌이고 있다.

부산=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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