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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프랑스 유명 소설가 르 클레지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지난달 내한했던 프랑스의 대표적 소설가 르 클레지오(61)가 한국 방문 당시의 감흥을 담은 장시(長詩)를 보내왔다.

『조서』『사막』『황금물고기』 등 30여편의 작품을 발표해 현대 프랑스 문단의 살아있는 신화로 통하는 그의 책은 국내에서도 10여권이 번역됐다.

귀국 다음날인 10월 22일 프랑스어로 쓴 이 시의 제목은 '운주사(雲住寺), 가을비'. 그는 서울에서 문학 강연을 마친 뒤 사흘간 전남 화순 운주사 등 남도 기행에 나섰다. 젊은 시절 태국에 체류하며 불교를 접했던 그는 해외 여행에서 문학적 영감을 얻는 것으로 유명하다.

"흩날리는 부드러운 가을비 속에/꿈꾸는 눈 하늘을 관조하는/와불/구전에 따르면, 애초에 세분이었으나 한분 시위불이/홀연 절벽쪽으로 일어나 가셨다/아직도 등을 땅에 대고 누운 두분 부처는/일어날 날을 기다리신다/그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거란다."

그가 모로코인 아내 제미아와 함께 운주사를 찾은 날 처연한 가을비가 내렸다. 이 비가 동양 사상과 불교에 관심이 깊은 그의 마음을 울렁이게 했을까. 천불천탑의 전설이 서려있는 운주사에서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의 5천년 역사에 눈뜬 것인가. 이 시는 예정에 없던 시다. 클레지오의 시심(詩心)은 그를 초청한 대산문화재단 팩스에 '뜨르르' 들어왔고 최근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최미경 교수가 번역을 끝냈다.

남도의 풍광은 시로 등단한 뒤 소설가로 전업한 그에게 20년 만에 시를 쓰게 했다.

시에는 한국 음식에 대한 느낌도 담겨 있다.

"살며, 행동하며/맛보고 방관하고 오감을 빠져들게 한다/번데기 익는 냄새/김치/우동 미역국/고사리 나물/얼얼한 해파리냉채/심연에서 솟아난 이 땅엔/에테르 맛이 난다."

"고요하고 정겨운/인사동의 아침/광주예술인의 거리/청소부들은 거리에 널린 판지들을 치우고/아직도 문이 열린 카페에는 두 연인들이 손을 놓지 못한다"며 이곳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관조하고 있다.

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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