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도 밥 짓는 등 집안일 도와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저녁에 먼저 귀가하면 밥도 짓고, 아침이면 소학교(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애의 옷단장도 돌봐줘라."

평양에서 발행되는 월간잡지 천리마가 남편들에게 아내의 가사노동을 도우라고 강조했다. 권위주의적 가부장제에 익숙한 북한 남성들에게 이런 공개 주문을 하는 것은 이례적으로, 사회 변화의 한 단면이라는 게 우리 당국의 판단이다.

25일 입수된 이 잡지는 평북 신의주시 남상동 4인민반에 사는 이성택.현정희씨 부부를 바람직한 가사 분담의 모범사례로 제시했다. 남편 이씨는 "아침에는 아들애의 손목을 잡고 유치원에 데려다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잡지는 "아내가 남자에 비해 훨씬 바쁘게 생활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씨는 틈틈이 아내의 일손을 돕는 것은 물론 크고 작은 가정일을 도맡아 처리한다"고 전했다.

아내의 건강 관리에도 관심을 갖고 직장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챙겨준다는 것이다.

한 탈북 인사는 "봉건 요소가 많이 남은 북한에서는 남편이 왕으로 대접받고, 집안일은 부인이 하는 걸 당연시한다"며 "남한에 와 TV 드라마를 접한 북한 여성들이 '평등한 부부관계'에 눈 뜨면서 제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북한에서도 남자가 좋던 시절은 다 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영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