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미술가 안성금전 가나아트센터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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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사회의 문제, 현장의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해온 국제적인 설치미술가 안성금(43.사진)씨의 개인전이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戰時中.展示中-On the war.On the show'(전시중.전시중)이란 제목처럼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을 계기로 평화와 자유에 대한 갈망, 세계화의 허상에 대한 절망을 표현하는 작품들이다.

첫 개인전을 열던 1983년부터 올해에 이르는 18년간의 작품 중 설치 4점, 평면 15점, 오브제 5점 등을 골라 출품했다.

제2전시장에는 수도하는 승려나 삶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보통사람들의 얼굴을 담은 초기의 평면작품이 나와 있다.

광목천에 먹물로 그린 이미지들의 강렬한 표현력이 인상적이다.

불경의 일부에 검은색(침묵의 빛깔은 검다고 작가는 말한다)을 칠해 관세음의 소리를 지향한 작품도 있다.

'부처의 소리' 초기작에 대해 작가는 "나에게 소리란 침묵과도 쉽게 결합할 수 있는 넓은 개념이다. 내 작품은 충만함과 공허함 사이의 끊임없는 관계다. 빛과 어둠, 백과 흑이요, 밀가루가 하얀 것처럼 침묵은 어두운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미술에 대한 자세는 85년 작가노트에 밝힌 내용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한다.

"나의 작업은 예술작업에 대한 질문이나 유희가 아니다. 나의 고뇌와 수고를 동반하고 심안으로 본 인간세계에 대한 나의 증언이며 고백이다. 나는 육안으로 보지 않고 심안으로 본다."

센터 중간뜰 야외 테이블에는 파라솔을 이용한 설치작품이 놓여 있다.

파라솔 천은 미국 성조기를 상징하는 줄무늬위에 미 국방부의 오각형 모양,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동원된 B-52 폭격기, 이스라엘 국기의 다윗의 별 모양 등을 더한 올해의 신작이다. 별다른 설명 없이도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시각을 느낄 수 있다.

야외 공연장에는 컴퓨터로 만든 침대 머리맡에 대형 미사일이 자리잡고 있는 '세계화'가 설치돼 있다. 지난해 광주 비엔날레'예술과 인권전'에 출품됐던 작품이다.

제3전시장에는 반으로 잘린 불상 설치'부처의 소리'가 자리잡았다.

바닥에는 흰 밀가루가 깔려 있어 침묵을 나타내는 검은색에 대한 은유적 대비와 미국의 탄저병균 공포를 표현했다.

부처연작은 몸 전체나 머리 부분이 절단돼 있어 신성불가침이 파괴됐다는 충격을 주었던 작품. 이를 통해 현대인의 반인륜적인 폭력, 비인간화에서 비롯되는 사람에 대한 절망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중생과 함께 상처받고 고뇌하는 불성을 나타내는 것으로도 읽을 수 있다.작가는 83년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뒤 86~95년 파리에서 작품활동을 하다 귀국했다.

이번 전시는 통산 28회째, 국내에선 박영덕 화랑 귀국전 이후 6년 만의 개인전이다.

귀국 이래 영국 런던, 이탈리아 밀라노, 스페인 발렌시아 등지에서 초대전을 하면서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12월9일까지. 02-720-1020.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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