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표가 무서워서… 추곡가 인하 여야 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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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쌀값으로 상징되는 농촌문제가 여야 정치권의 핵심 관심사로 부상했다.

농림부 자문기구인 양곡유통위원회(양곡위)가 뉴라운드 체제에 대비한 경쟁력 강화를 내세워 내년 추곡 수매가를 사상 처음으로 인하(4~5%)하자는 건의안을 낸 것이 도화선이 됐다.

◇ 정치권 반발=여야 모두 강력히 반대했다.

19일 오전 민주당 확대간부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왜 우리가 모든 비난을 감당해야 하느냐"며 인하방침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이인제(李仁濟)고문은 "결국 비난과 책임은 당의 몫이 된다"고 지적했다. 김원기(金元基)고문도 "종합적인 대책이 나오기도 전에 쌀값 인하계획만 나와 농민을 자극했다"고 비난했다.

한나라당 김만제(金滿堤)정책위의장도 "추곡가 인하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쌀농사 직불제 등 농가 소득을 보전해주는 대책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방침은 오후 당 정책위.농림해양수산위 긴급 연석회의에서 그대로 추인됐다.

이같은 정치권 분위기 탓인지 김동태(金東泰)농림부 장관은 민주당과의 당정회의에서 "추곡 수매가를 인하하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농가소득을 보전하겠다"고 밝혔다. 이 발언에 대해 민주당 박용호(朴容琥)농어촌대책특별위원장은 "농림부가 확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추곡 수매가 인하안은 사실상 백지화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 도농(都農)출신간 이견=추곡 수매가는 양곡관리법에 따라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1차 관문인 농해수위의 대부분 의원들이 반대하고 있다(표 참조). 이들의 지역구는 대부분 농촌이다.

민주당 장성원(張誠源.김제)의원은 "농촌을 되살릴 종합적인 대책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고, 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남해-하동)의원은 "뉴라운드 대처방안이 쌀값 인하로 나타나는 것은 패배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한 의원은 "내년 정치일정을 생각해 보라"는 말도 했다. 양대 선거를 앞두고 농심(農心)을 좌우할 쌀값 인하정책을 추진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다.

다만 일부 도시 출신 의원이 "쌀값을 현실화해야 한다"(鄭寅鳳.한나라당.서울 종로)고 주장했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양곡위 안(案)이 그대로 시행될 것 같지는 않다.과거에도 정부 안은 국회를 거치며 대부분 '친(親)농민적'으로 바뀌었다. 올 초에도 정부가 추곡 수매가를 3% 인상해 5백81만4천섬을 구입하겠다고 한 것이 국회에서 4%, 5백75만3천섬으로 바뀌었다.

한 의원은 "추곡수매가 결정이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한 인하안은 통과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단정했다.

김종혁.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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