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비전] 삼바축구 몰락은 집안싸움 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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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월드컵의 영원한 우승후보 브라질이 천신만고 끝에 2002 한·일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움켜쥐었다. 막다른 벼랑에서 베네수엘라를 제물로 본선행을 확정지었으나 브라질 축구의 '몰락'은 연구 대상이다.

브라질 축구의 역사는 찬란하다.월드컵에서 네차례 우승(1958,62,70,94년)과 2회 준우승(50,98년), 세계청소년축구대회 세차례 우승(83,85,93년) 등 명실공히 축구의 대명사였다. 30년 제1회 우루과이 대회부터 한차례도 빠지지 않고 본선에 오른 나라는 브라질이 유일하다.

그동안 월드컵에서 거둔 브라질의 전적은 80전 53승14무13패(1백73득점.78실점)로 승점이 1백20점이나 된다. 2위인 독일이 1백7점, 이탈리아가 92점, 아르헨티나가 68점이니 당분간 브라질을 추월하기 어렵다.

브라질 축구는 자갈로·펠레·토스타오·자일징요·지코·소크라테스·호마리우·베베토·히바우두·호나우두로 이어지는 스타 계보를 만들어왔다.

브라질 축구가 올해 남미지역 예선에서 무려 여섯번이나 졌다.파라과이(1-2)·칠레(0-3)·에콰도르(0-1)·우루과이(0-1)·아르헨티나(1-2)·볼리비아(1-3) 등에 동네북처럼 연이어 터졌다. 이 와중에 7년 동안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세계축구연맹(FIFA) 랭킹 1위 자리도 프랑스에 내줬다.

현존하는 최고의 스타로 꼽히는 '왼발의 달인' 히바우두와 오버래핑의 대명사 호베르투 카를로스,주닝요·카푸·에메르손·에디우손·호나우딩요 등이 건재하건만 왜 수모를 당하고 있는가.

첫째, 예선전에 60여명의 선수가 뛰는 등 조직력의 극대화를 꾀하지 못했다. 아르헨티나가 25명 내외의 탄탄한 팀워크로 일찌감치 1위를 확보한 반면 브라질은 무수히 많은 선수를 가동하며 브라질 특유의 삼바리듬 축구를 보이지 못했다.

둘째,유럽에 진출한 스타들과 감독간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일부에서는 유럽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이 시차적응에 실패했다고 해석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감독과 선수들의 갈등이었다. 이는 곧 경기력의 약화로 이어졌다. 결국 룩셈부르고 감독에서 레앙 감독으로,또 스콜라리 감독으로 이어지는 극약처방뿐이었다.

아르헨티나도 대부분 선수들이 유럽에서 뛰고 있으나 시차 문제 때문에 경기력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셋째, 브라질축구협회의 부패와 행정력 부재였다. 지난 30년 동안 후앙 아벨란제 회장이 협회를 이끌며 저지른 권력 남용과 부정부패의 후유증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아벨란제가 물러나면서 후임 회장을 가족에게 대물림한 뒤 세금 포탈 혐의로 조사를 받는 등 브라질 축구계는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유럽 명문 클럽에서 뛰는 선수들을 소집할 때마다 협회가 원만하게 일처리를 하지도 못했다. 최근 볼리비아전에서 히바우두와 카푸는 소속팀과 협회의 갈등으로 경기 하루 전에 도착했다.

무려 2천여명(유럽만 1천5백명)의 선수가 외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축구왕국 브라질 몰락의 가장 큰 원인은 내부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중앙일보 축구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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