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안락사 허용'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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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대한의사협회가 소극적 안락사 허용 등을 담은 의사 윤리지침을 제정한 데 대해 시민단체와 종교계가 생명경시를 가속시킬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의사협회는 소극적 안락사.낙태나 성 감별의 제한적 허용 등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냈으나 실정법에 저촉돼 의사 면허가 취소될 수도 있다.

◇ 제정 배경=의협은 소극적 안락사나 낙태,성 감별,대리모 등 논란이 되는 행위들이 실제 의료현장에서 상당 부분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현실을 인정하고 의사들에게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소극적 안락사가 음성적으로 행해지는 것은 병원에서의 죽음을 객사(客死)로 간주하는 사회적 정서 때문이라는 것이 의협의 입장이다.

의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상당 시간 목숨을 유지할 수 있으나 이는 사회적으로 자원 낭비며 가족들에게 경제적.정신적 고통을 수반한다는 것도 지침제정의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논리로 제시했다.

낙태의 경우 연간 1백50만건 이상 무차별적으로 이뤄지고 미혼모도 양산되는 실정이며,대리모는 입양을 꺼리는 사회 풍조 때문에 수천만원을 들여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의협의 설명이다.

◇ 찬반논쟁=고려대 법대 이상돈 교수는 "안락사는 지금도 방관되고 있다"면서 "법제화하되 엄격하게 관리하면 된다"고 찬성 입장에 섰다.

반면 생명안전 윤리모임 박병상 사무국장은 "의협 윤리지침이 허용되면 가난한 사람이 대리모가 되거나 소극적 안락사 대상이 되는 등 사회적 약자가 피해를 볼 것"이라면서 "충분한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반대했다.

특히 기독교계는 낙태나 성감별 행위를 조장하는 등 생명 경시 풍조를 부채질할 것이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 문제점=의사들이 윤리지침에 따라 의료행위를 하더라도 실정법에 저촉돼 형사 처벌을 받고 의사 면허까지 취소될 수도 있다.

소극적 안락사의 경우 '회생 불능 상태'에 대한 판단이 모호하다는 점도 문제가 될 수 있다.1997년 서울 B병원의 경우 재판부가 회생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살인죄를 적용했다.서울대 의대 이윤성 교수는 "의사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판단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외국의 경우=네덜란드가 지난 4월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했을 뿐이다.덴마크에서는 완치가 불가능한 환자가 스스로 치료를 거부할 수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소극적 안락사와 비슷한 개념인 존엄사(尊嚴死)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영국.프랑스.독일 등에서는 안락사 반대 여론이 높다.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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