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운드 타결 초읽기] 한국의 손익계산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도하(카타르)=홍병기 기자]뉴라운드 협상에서 한국은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잃은 것이 더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당초 정부는 농업 분야와 반덤핑 조항 개정을 핵심 과제로 삼아 협상 역량을 집중했다. 하지만 단순히 산업 차원이 아닌 정치적 의미가 큰 농업 분야에서 한국의 입장을 설득시키지 못했다.

그동안 줄기차게 주장해 온 점진적인 시장개방 원칙 대신 결국 사실상 대폭적인 시장개방을 뜻하는 '실질적'이라는 표현이 각료 선언문에 채택됐기 때문이다.

농촌 개발과 환경보전 등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강조하는 '비교역적 기능'은 무역을 왜곡하지 않는 경우에만 허용하겠다는 농산물 수출국가 모임(케언즈 그룹)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일단 선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의제 채택에는 성공했지만 이를 추후 협상의 핵심 요소로 삼지 않고 고려 사항으로만 명기해 약발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반덤핑협정의 개정 문제가 의제로 채택돼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미국과 조율하는 과정에서 초안에 있었던 '협상의 즉시 개시' 조항이 희석돼 결국 너무 많이 양보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래도 쌀시장 개방 유예 등을 규정한 '예외 조항'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이 없어 우루과이라운드에서 인정받은 2004년까지의 개방 유예 일정을 지킬 수 있게 된 점이 그나마 얻은 것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개발도상국의 발언이 셌던 투자.지적재산권 등 분야의 협상 과정에서 한국은 미국의 입장에 동조함으로써 개도국들로부터 적지 않은 주목을 받았다. 따라서 앞으로 개도국 그룹과의 관계 설정에 상당히 신경을 써야 할 것으로 요구된다.

그러나 공산품 분야에서는 앞으로 관세가 더욱 큰 폭으로 인하될 것이므로 수출에 보탬이 될 것이다.

최근 비중이 낮아지고는 있지만 수출이 국내총생산(GDP)의 45%를 차지하는 수출주도형 산업구조인 한국으로선 공산품의 추가적인 관세 인하에 기대를 걸 만하다.

결국 새로 출범한 다자 규범의 수혜 국가가 되느냐는 농산물 등의 시장개방 확대로 잃는 것에 비해 공산품 수출 등을 통해 얼마나 더 벌어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