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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경제 풍경 세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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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지난 1, 2년간 한국 경제의 움직임과 정책에 관한 논의를 회고해 보면 답답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수출이 30%씩이나 늘고 있는데도 국내 경제운영을 어떻게 했기에 국민의 한숨소리만 높아지게 됐는지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조용히 눈을 감고 쟁점이 됐던 사건들을 돌이켜 보면 특히 세 가지 안타까운 풍경이 다가온다.

첫째가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안 보고 손가락을 두고 시비하는' 광경이다. 개혁정책에 대해 반발과 비판의 소리가 높아지자 여권인사가 고명한 스님의 얘기를 인용해 개혁안의 내용(달)을 제대로 음미하고 평가하면 될 일이지 왼손 손가락(좌파)인지 오른손 손가락인지가 왜 시빗거리가 되느냐고 개탄했다.

그러나 재계와 야당의 반론도 만만찮다. 지금은 달이 구름에 가려져 있어 위치를 알 수 없는 상태다. 갑자기 이쪽이요 하고 가리키는 자가 나온다면 우선 그 사람의 성향이나 신뢰도부터 따져봐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자 정부 쪽에서는 지금까지 좌파정책 취한 것이 뭐 있느냐며 추궁하고 나선다. 반대파 쪽에서는 현 정부가 능력이 없어 제대로 된 정책 하나 추진하지 못했으니 좌파정책도 없고 우파정책도 없는 것 아니냐고 재반격한다.

성장이냐 분배냐, 좌파냐 우파냐 따져대고 서로 발목 잡고 상처 주면서 제자리걸음하느라 아까운 시간만 허송하는 풍경이다.

둘째는 'X-레이 사진을 들고 주물럭거리는 의사'의 모습이다. 한국 경제라는 환자가 종합검진을 받았는데 가슴 부분이 좋지 않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렇다면 정밀진단을 하든지 약을 처방해야 할 텐데 왠지 이 의사는 X-레이 사진과 기사만을 탓하고 있다. 과거 환자한테 이상무라고 오진을 내렸던 게 찜찜해 그런 걸까? 여차하면 사진에 덧칠을 해서라도 이상이 없다고 고집할 기세다. 여기에 겹쳐지는 그림은 외국 평가기관이 한국 경제의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발표하자 정부가 발끈하는 광경이다. 평가방법의 객관성과 평가기관의 신뢰성을 문제 삼고 항의하는 소동이 난다. 내용 면에서 많은 국민도 동의하는 것이라면 남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셋째는 '혼란스러운 통화정책에 당황해 하는 금융시장'의 모습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이후 지금까지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은 쓰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여기에는 과거 정권과 차별화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문제는 한국은행이 지난 8월 살짝 금리를 낮추더니 이번달에 다시 금리를 낮췄다는 것이다.

경기에 문제가 없고 인위적 대책이 필요 없다는 정부 측에 한국은행이 반기를 든 것인가? 재경부 말을 믿고 따르다간 쓴맛을 보게 되는 건가? 그만큼 한국은행은 독립성이 확립된 것인가? 아니면 정부의 속내를 사실상 뒤치다꺼리해 준 것으로 봐야 하는 것인가? 금융시장은 해답 찾기에 분주하다.

내년에도 이런 풍경이 되풀이돼도 좋을 만큼 우리 경제는 여유롭지 못하다. 해외경기가 둔화하는 분위기인 데다 원화가치가 절상돼 수출 증가세가 주춤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런 혼란과 답답함은 정부가 스스로의 과오를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는 독선에서 비롯된 바 크다. 세 가지 풍경이 시사하는 교훈은 간단하다. 경제회복을 위해서는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한편 논란 많고 의심 가는 정책과 행동을 자제해 정부와 정책의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가 집권 3년째가 되는 내년에는 국민에게 보다 상쾌한 경제 풍경을 선사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노성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