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3년 … '차별의 벽' 낮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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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제가 새 삶을 시작한 것은 국가인권위원회 덕이죠."

근로복지공단 6급 행정직원 박상원(43)씨, 그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최근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1998년 사업에 실패한 뒤 경비원.순찰대원 등을 전전하던 그다. 대학을 졸업하고 공기업에서 일한 경력이 있지만 나이 제한 때문에 원서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해 말 국가인권위원회에 '공기업의 연령.학력 제한은 차별'이라는 진정이 접수된 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7월 나이.학력 제한을 폐지했다.

김모(52.여)씨에게도 인권위의 의미는 각별하다. 국립대 도서관 사서인 김씨는 뇌성마비 3급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20년 동안 6급으로 승진하지 못했다. 동료들은 6~13년이 지나면 승진한다. 인권위는 실태를 조사한 뒤 "김씨의 장애는 업무에 지장이 없으므로 승진 누락은 차별"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차별행위 중지 및 재발 방지를 총장에게 권고했다.

김씨는 "일부 동료조차 '장애가 있기 때문에 승진을 못 하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니냐'고 말해 왔다"며 "승진을 막는 것을 차별이라 말해준 것만으로도 인권위가 고맙다"고 울먹였다.

인권위가 출범 3주년을 맞아 24일 1기 활동을 끝낸다. 김창국 위원장은 "국가보안법.사회보호법 폐지 권고처럼 큰 사안보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며 특히 차별에 대한 국민의 인식변화를 성과로 꼽았다. 추상적인 '차별'의 의미가 인권위에 의해 구체화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 인권위는 그동안 접수한 1만2176건의 진정 가운데 20.4%를 기각했다. 조사 대상이 국가.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 등으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발생한 지 1년이 지난 사건에 대해서는 조사권한이 없고, 수사기관이 조사에 착수하면 인권위가 손을 떼야 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2기 인권위는 25일 추범하지만 새 위원장이 아직 임명되지 않았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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