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당총재 사퇴] 쇄신 압박에 '백의종군' 승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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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승부수를 던졌다. 민주당 총재직을 버리고 백의종군(白衣從軍)을 선언했다. 金대통령은 그동안 한나라당의 끈질긴 총재직 사퇴 요구를 "정당정치제에서 대통령이 여당 총재직을 사퇴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라며 일축해왔다.

한 관계자는 "지난 1년 동안 끊임없이 분란을 일으키고 있는 민주당을 끌어안고는 임기 말 국정 마무리가 어렵다는 것이 金대통령의 판단"이라고 전했다.

내분을 가라앉혀도 점점 빠른 주기로 반복되고 있어 미봉적인 조치로는 흐름을 바꿀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당이 요구해온 인적쇄신뿐 아니라 스스로 총재직을 버리는 결단을 함으로써 쇄신파의 압박을 일거에 털어버리는 충격요법을 선택한 셈이다.

이제 金대통령의 최대 관심사는 국정을 잘 마무리해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정권 재창출은 그 다음 순위란 얘기다. 정권 재창출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자신의 업적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한 방편이란 점에서 임기 말 국정관리에만 관심을 쏟을 수 있는 명분을 갖게 됐다.

金대통령은 여야 정쟁(政爭)의 핵심에서도 한발 비켜설 수 있게 됐다. 이미 자민련 김종필(金鍾泌)총재와의 공조가 깨지면서 국회에서 독자적인 의안 처리가 불가능해진 상태였기 때문에 중립적 위치에서 국회에 협조를 요청할 여지가 생겼다.

한나라당도 그동안 金대통령이 여당 총재직에서 물러나 국정을 중립적으로 운영할 경우 돕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어 당분간은 협조적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

이날 당무회의에 보낸 친서에서도 金대통령은 "미국의 테러사태 이후 전개된 초긴장의 국제정세와 경제의 악화에 대처하는 데 오로지 있는 힘을 다하여 노력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등 대북관계도 정쟁을 피하면서 속도를 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도 민주당에 변화의 계기를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란 얘기 또한 나온다. 7일 청와대에서 열린 당 지도부 간담회에서 "당의 지지도는 한나라당보다 6% 앞서는데 재.보선에서 졌다"고 지적한 것도 이같은 인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 측근은 설명했다.

따라서 민주당에 대한 金대통령의 영향력은 감소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金대통령은 1987년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 뒤 총재직을 버리고 백의종군했고, 92년 대선 후에는 정계은퇴를 선언한 뒤 복귀의 힘을 비축한 전례가 있다.

더구나 당에는 동교동계가 최대 지분을 확보하고 있어 내년 전당대회를 둘러싼 경합이 치열할수록 金대통령의 영향력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金대통령이 당에서 완전히 손을 뗀 것으로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金대통령의 이같은 승부수가 여권 내부의 갈등을 촉발하고 공직자들의 정치권 줄서기 등을 가속할 것으로 보여 레임덕(임기말 권력누수)현상을 부채질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김진국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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