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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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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조선 숙종 때인 1702년 11월 19일 제주목(濟州牧)에서 양로잔치가 열렸다. 80세 이상 남녀 노인 183명과 90세 이상 남녀 노인 23명 외에 100세 이상 남녀 노인 3명도 참석했다. 당시 제주 목사였던 이형상(李衡祥)이 1704년에 저술한 제주도 인문지리지 ‘남환박물지(南宦博物志)’에 남겨진 내용이다. 제주도 백세인(百歲人)에 관해 체계적으로 작성된 최초의 공식 기록이다.

이형상 목사는 ‘탐라계록초(耽羅啓錄抄)’란 저술에 사람 나이 ‘백세(百歲)’에 대한 소회를 남기기도 했다. “세상에서 70세 이상이면 이미 드문 나이다. 80, 90세 이상은 사람들이 나라에 복되고 길한 일이라고 일컫는다. 하물며 100세 이상이야 어찌 지극히 귀한 나이가 아니겠는가.” 백세인이 그야말로 인간 수명의 최대 한계까지 도달한 경이로운 존재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00세란 나이가 과거 인류에게 ‘인간 삶의 한계’의 상징으로 비유된 건 동서(東西)가 다르지 않다. 구약성서는 ‘영원한 생명’을 빗대는 말로 ‘백세’를 거론한다. 이사야서의 ‘백세에 죽는 자가 아이겠고, 백세가 못 되어 죽는 자는 저주받은 것이리라’는 구절에 보인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도 백세가 언급된다. ‘인무백세인 왕작천년계(人無百歲人 枉作千年計)’란 대목이다. ‘백세를 사는 사람이 없건만 사람들이 헛되이 천년 계획을 세운다’는 뜻으로 사람이 100년을 살지 못함을 전제로 지은 말이다.

이 구절은 이제 고쳐 써야 할 듯싶다. ‘백세인 현상(centenarian phenomenon)’ 운운하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의학의 발달과 식생활 개선으로 백세인 인구가 급증하는 추세다. 통계청의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국내의 만 100세 이상 인구도 961명으로 5년 전에 비해 3%가 늘었다. 미래학자 피터 슈워츠는 인간의 수명을 140세까지 내다보고 있다. 과거 인류가 상상하지 못했던 ‘초장수(超長壽)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서울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다가 지난해 면허정지 처분을 받았던 만 100세의 한의사가 그제 법원의 처분 취소 판결을 받아냈다. 그 나이가 되도록 일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도 놀랍거니와 계속 일하기 위한 자격증을 지키겠다며 송사(訟事)도 마다하지 않은 노익장(老益壯)이 감탄스럽다. 은퇴 후 삶이 막막해 주눅들어 있는 중장년층이라면 이 ‘100세 직업인’을 보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을 일이다.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