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진 기자의 오토 살롱] 시보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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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GM대우가 내수 시장 20% 탈환을 위한 비장의 무기로 내년 ‘시보레(Chevrolet)’ 브랜드를 도입한다. 자체 조사 결과 최근 2년간 판매된 GM대우 신차의 30% 이상이 시보레 로고를 달고 있다고 한다. 시보레 브랜드가 정식 도입되기 전인데도 고객 스스로 20만원 정도 하는 시보레 로고 세트를 구입해 단 것이다.

시보레는 캐딜락·링컨과 같은 고급 브랜드는 아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대중차다. 경차부터 중대형차·스포츠카·픽업트럭까지 30여 개 모델이 있다. 시보레는 지난해 전 세계 130개 국가에서 350만 대를 팔았다. 단일 브랜드 판매로는 도요타·포드·폴크스바겐 다음이다. 시보레 브랜드는 GM의 설립자인 윌리엄 듀런트가 1911년 당대를 풍미한 자동차 레이서인 루이스 시보레를 만나면서 생겼다. 그해 11월 두 사람은 시보레 자동차를 설립한다. 당시 듀런트가 시보레로 사명을 지은 것은 유명 레이서의 명성을 이용하려던 의도도 있었지만 미국인들에게 이 발음이 듣기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시보레를 줄여 ‘셰비’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독특한 나비넥타이 모양의 로고는 듀런트가 1908년 파리에서 머물렀던 호텔방 벽지에서 영감을 얻어 창안했다고 한다.

시보레가 유명해진 것은 1914년 출시한 ‘490’ 모델부터다. 당대의 베스트셀러 카인 T형 포드의 경쟁차로 나온 이 차는 2.8L 엔진을 달았고, 가격은 490달러였다. 차명을 가격에서 따 온 셈이다.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27년 100만 대 판매 기록을 세우며 포드를 따라잡았다. 시보레의 명차는 53년 자동차 최초로 섬유유리를 차체에 사용한 스포츠카 ‘코르벳(Corvette)’이 꼽힌다. 지금도 미국 부자들이 즐겨 타는 차다.

66년에는 미국 젊은이들의 드림카인 포드 머스탱의 대항마 ‘카마로’가 나왔다. 미국 최고의 레이스인 나스카에서 여러 번 우승을 차지한 대중 스포츠카다. 최근 영화 트랜스포머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당시 이 차의 디자인은 한국인 이상엽씨가 맡아 국내에서 관심을 더했다.

시보레는 한국과 일찍 인연을 맺었다. 77년부터 81년까지 새한자동차(대우차 전신)에서 생산한 ‘제미니’가 시보레 쉬베트다. GM대우는 이처럼 한국과 인연이 많은 시보레를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내년부터 판매한다. 회사 측은 고객이 GM대우 로고를 원하면 그대로 달아주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런 경우는 10%도 채 안 될 것으로 보고 있다. 90년대 대우그룹 시절 세계경영의 기치 아래 동유럽에서 승승장구했던 대우차 로고는 사라지는 셈이다. 실패한 브랜드는 기록에만 남을 뿐이다. 이는 세계 자동차 100년 역사를 보면 필연이다. 한국에서 시보레는 성공한 브랜드로 남을 수 있을까.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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