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서 수능 정답 '중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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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지난 17일. 광주광역시 용봉동의 H고시원은 휴대전화를 이용한 부정행위의 '작전통제실'이었다. 24일 동아일보는 16일 저녁부터 시험이 끝난 17일 오후까지 이곳은 대학생 7명의 진두지휘하에 긴박하게 움직였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141명의 부정행위 가담자들은 16일 오후 인근 놀이터에 모여 최종점검을 했다. 이어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4, 5명씩 조를 짜 고시원으로 숨어들었다. 고시원에서는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최대한 정숙을 유지하기로 했다. 두 고시원의 4, 5평 방 네 곳에 10명 가량씩 투숙했다. 다리 뻗기도 어려운 좁은 이곳에서 이들은 밤새 실전 모의 훈련을 했다.

그러나 '실전'은 달랐다. 수십 개의 수신음과 송신음이 뒤섞이면서 답을 제대로 받아 적지 못하는 이들이 속출했다. 답을 전송하는 과정에서도 문자 전송이 자꾸 실패하면서 혼란이 일어났다.

여기에 '중계조'로 일했던 광주 A고등학교 K군(17)은 "예상과 달리 계속 혼선이 생기자 '그만두겠다'며 고시원을 뛰쳐나가려는 학생도 있었다"며 "중계관리를 맡은 대학생 형들이 윽박질러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답을 모아 분석한 뒤 다시 보내는 과정에서 어떤 것이 정답인지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J고 C군(17)은 "답이 엇비슷하게 전달돼 온 경우엔 무엇으로 답을 보내야 할 지 몰라 우왕좌왕하곤 했다"면서 "서로 시끄럽다가도 혹시나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갈까봐 다들 신경이 엄청나게 날카로워지는 등 마치 지옥에서 보는 24시간 같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수능시험 직전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문제지를 팔려던 브로커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는 시험 엿새 전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의 '수능답안지 긴급입수'라는 카페에서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언어, 수리, 외국어, 한문 등 1,2,3,5교시 시험지와 답안을 입수했다. 시험지를 살 사람은 010-○○○-○○○○로 연락바란다"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고 24일 보도했다.

이 글을 보고 취재기자가 전화를 걸자 40, 50대로 추정되는 남자가 "지금 답안지를 만들고 있는 중이니 내일 아침에 다시 연락하자. 가격은 네 과목에 500만원이다"라고 말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진짜인지 어떻게 믿느냐"는 질문에 "여러 명이 빼내 온 것이다. 믿지 못하면 거래할 수 없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날 아침 그는 "팀 내에 문제가 생겨 문제지가 줄었다. 언어영역, 수리탐구영영 '나'형 문제지만 갖고 있다. 감시가 심하니 가격을 올려야겠다"며 700만원을 요구했다. 그는 "계좌로 돈을 보내주면 모범택시를 이용해 주소지로 문제지를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이들은 연락이 두절됐다.

이들과 접촉한 학부모 김모(50)씨는 "솔직히 급한 마음에 얼마를 주고라도 시험지를 사려 했지만 갑자기 접촉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결과 휴대전화 번호는 외국인 명의로 된 '선불제' 전화였음이 밝혀졌고 계좌도 노숙자 명의로 된 이른바 '대포계좌'임이 확인됐다. 인터넷 카페 개설자 역시 명의를 도용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디지털뉴스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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