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젊은층 왜 野에 냉담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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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세상사란 그런대로 공평한 데가 있게 마련인가 보다. 승자를 경계하고 패자에게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남겨주니 말이다.

3대 0이란 10.25 재.보선의 결과는 한나라당의 '완승' 내지는 민주당의 '참패'로 해석해도 전혀 무리가 없다.

선거 결과가 민주당에 전하는 메시지는 준엄한 꾸중이다. 그러나 20,30대 젊은 유권자들은 선거결과와는 반대의 지지성향을 보였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 "표를 찍어줘봐야 뭣하나"

선거기간 중 여론조사와 부재자투표 결과를 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선거 1주일 전 한 유력 여론조사기관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서울 구로을의 경우 20대 유권자의 한나라당 후보 지지도는 14%, 민주당 후보 지지도는 두배인 28%였다.

30대 유권자는 야당 후보에게 22%, 여당 후보에게 26%의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정당 지지도도 20대의 경우 야 12%.여 29%였으며, 30대는 야 17%.여 26%였다.

동대문을도 이와 다르지 않다. 20대 유권자는 여 후보에게 27%, 야 후보에게 15%의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30대는 여 후보에게 40%, 야 후보에게 14%의 지지를 나타냈다. 정당 지지도도 20대 유권자는 여 27%.야 22%를, 30대 유권자는 여 26%.야 19%를 나타내고 있었다.

20, 30대가 총유권자의 6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젊은층의 지지를 받고 있는 민주당 후보는 지기 어려운 선거에 패배했으며, 한나라당측도 이기기 어려운 선거에서 승리한 것이다.

이는 선거 막바지에 터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의원의 '제주도 휴가사건' 때문만이라고 보기에는 석연찮다.

아파트촌의 투표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는 점, 마감시간 직전 투표율이 수직상승했다는 점 등으로 볼 때 분석이 가능하다.

선거전문가들은 "아파트의 투표율이 단독주택 지역보다 높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결국 한나라당 지지자는 "따끔한 맛을 보여주겠다"며 투표장으로 모였고, 민주당 지지자는 "표를 찍어줘봐야 뭣 하나"라는 체념과 배신감으로 투표를 포기한 것이다.

그러나 젊은층의 지지도가 높다는 것은 민주당에는 그나마 고무적이다. 내년 대선에서 이들을 결집시킬 수만 있다면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 반대로 한나라당으로서는 비록 재.보선에선 이겼지만 20, 30대 청년층의 외면을 다시 확인한 셈이다.

다른 여론조사 결과도 비슷한 조사내용을 보여주고 있으며, 군인과 경찰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부재자 투표결과도 마찬가지다. 구로을 부재자 투표에서 한나라당 후보는 9백26표 중 1백40표(15%)를, 민주당 후보는 4백31표(46%)를 얻었다. 동대문을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타났다.

한나라당 고위 관계자들도 고백하듯 반(反)민주당 분위기가 팽배한 가운데서도 20, 30대 유권자를 끌어당기지 못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민주당 후보가 일찌감치 당선권에서 멀어진 강릉의 경우를 보면 20대 유권자는 한나라당 후보에게 11%, 무소속 후보에게 18%의 지지를 나타냈다.

30대는 한나라당 후보에게 21%, 무소속 후보에게 25%의 지지를 보였다. 젊은층의 한나라당에 대한 거부감이 간단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 野 외면한 20,30대 유권자

상대적으로 적은 여성 당직자의 활동, 남북문제에 대한 완강한 자세, 툭하면 내뱉는 색깔시비, 젊은층 취업난에 대한 건성뿐인 대책, 소극적인 개혁자세 등이 청년층의 냉담한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한나라당은 뒤늦게 네티즌을 상대할 수 있는 사이버 홍보국을 설치하고 대학생과의 간담회를 여는 등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외형적 조치나 일회성 행사만으로는 젊은층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

'열린 보수'가 되지 않고는 20,30대 유권자는 영영 등돌릴지 모른다. 청년층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지도자가 21세기의 한국을 어떻게 이끌어갈 수 있을지 이회창(李會昌)총재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김두우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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