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 발언' 파문…고개숙인 김근태] 왜 김 장관, 사과 서둘렀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23일 "죄송하다"고 했다. 자신의 연기금 입장표명 파문과 관련해 국무회의에서 그랬다. 그의 공식 사과는 노무현 대통령이 김 장관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에 나온 것이다.

김 장관은 국무위원들에게 "여러분께서 걱정할 일이 있었다"며 "결과적으로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민연금은 안전하게 운용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고 정순균 국정홍보처장이 전했다. 그러면서 "이번 글은 순전히 정책적인 문제 제기였다"며 "일부에서 정치적으로 확대해석하고 있는 것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의 사과 발언은 노 대통령과 전면적으로 부딪치는 극단적인 상황은 피하고 싶다는 뜻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이 경질하기 전에 알아서 물러나는 일은 없다는 취지로도 해석되고 있다.

한때 열린우리당 내 김 장관의 참모들은 노 대통령의 유감 표시 직후 "고난의 세월이 시작되는 게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대통령이 장관에 대해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는데, 어떻게 장관 자리에 앉아 있겠느냐는 것이다. 차제에 독자 행보를 준비하자는 강경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파국을 면해야 한다는 쪽으로 입장이 정리됐다. 김 장관의 핵심 측근은 "퇴진 운운하는 주장들은 정신나간 소리"라고 못박았다.

사실 김 장관의 거취가 변화할 경우 그 파장은 작지 않다. 그의 퇴진은 노 대통령이 짜놓은 '이해찬 총리-정동영 통일외교팀장-김근태 사회문화팀장'이라는 내각의 시스템 운영이 무너짐을 의미한다. 견제와 균형을 중시하는 노 대통령의 차기 구도도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당내 최대 세력의 하나인 재야파의 김 장관이 '마이 웨이'를 선언할 경우 노 대통령 직계 그룹과 재야파 간에 '내전 상황'이 조성될 수도 있다. 판이 깨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재야파와 경쟁관계인 당권파 의원들도 김 장관의 거취 변화를 원하지 않는 눈치다. 다만 그의 발언에 대한 당내 여론은 대체로 비판적이다. 한 수도권 의원은 "나도 김 장관의 연기금 발언은 심히 유감"이라며 "대통령이 배신감을 느낄 만하다"고 했다. 김 장관의 승부수가 내부적으론 오히려 실점 요인이 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김 장관을 경질하거나 퇴진을 종용할 경우 이런 분위기는 다시 바뀔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민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