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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회의만 했어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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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중 정책기획부 기자

커닝 사건으로 얼룩진 올 수능시험을 한 달 정도 앞둔 지난달 20일. 교육인적자원부의 지시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수능 시행 관리 책임자는 정보통신부.경찰청 관계자들과 수능 부정행위 방지를 위한 정부 합동 대책회의를 준비했다. 그의 손에는 이번에 광주에서 벌어진 커닝 수법과 거의 흡사한 부정행위 유형에 대한 우려가 담긴 '수능 부정행위 방지 종합대책' 문건이 들려 있었다.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모이면 '어떤 대안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회의를 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날 회의는 열리지 못했다. 정통부 측이 "업무상 이유로 참석하기 어렵다"고 불참을 통보해 왔기 때문이다. 회의는 26일로, 또다시 29일로 연기됐지만 끝내 한번도 열리지 못했다.

"사전에 휴대전화 기지국 폐쇄 가능성에 대한 질의에 대해 충분히 얘기를 했다고 생각해 참석하지 않았다"는 게 정통부 관계자의 해명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관계기관 회의 같은 데는 꼬박 참석하는 게 경찰인데, 회의 자체가 연기 또는 무산됐기 때문에 참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휴대전화를 이용한 부정행위 방지방안 협의' '사이버 수사대를 통한 부정행위 사전 적발' 등 준비된 안건은 논의되지 못한 채 두 기관에 협조공문을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국가시험인 수능의 부정행위 가능성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부 기관들이 취한 것이라고 믿고 싶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안이한 대처였다. 정통부.경찰청이나, 보다 적극적으로 사안의 심각성을 알려 회의를 성사시키지 못한 교육부나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진대제 정통부 장관은 22일 국회에서 "향후 교육부와 협의해 모든 시험장에 휴대전화 차단장치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사후약방문을 내놨다. 무산된 정부 합동 대책회의에서 진작에 논의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이래저래 이번 휴대전화 수능 부정행위 사건은 정부가 자초한 셈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됐다. 정부는 뒤늦게 24일 교육부.정통부.경찰청 등이 포함된 휴대전화 이용 수능 부정행위 방지 대책회의를 연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그나마 제대로 된 '외양간'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남중 정책기획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