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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오만해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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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 암살 41주년인 지난 22일. 그의 연설 한 편을 나의 기억에서 떠올렸다. 권력의 자기 절제를 다짐하는 명연설이다. 죽기 한달 전 케네디는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명문 앰허스트 대학을 찾았다. 그곳에서 미국의 대표적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추모 행사가 열렸다. 프로스트는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에서 자작시를 낭송한 적이 있다. 그 인연으로 앰허스트 강단에 섰던 프로스트를 기념하는 도서관의 기공식에서 연설을 한 것이다.

추모사는 프로스트의 유명한 시 '가지 않은 길'의 한 부분을 인용한다. "숲 속에 두 갈림길이 있었고/나는 사람들이 지나간 체취가 적은 길을 택했다/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리고 케네디의 연설은 본론으로 들어간다.

"한 나라가 위대해지는 데는 권력을 창조하는 사람들의 기여가 불가결하다. 그러나 권력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의 기여도 마찬가지로 불가결하다." 최고 권력자가 자신에 대한 비판과 질타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는 이런 다짐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면서 권력의 시각으로 시인을 평가한다.

"프로스트는 인간 정신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갖고 있다. 그가 인간과 권력을 묶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권력을 그 자체로부터 구원하는 수단이 시(詩)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케네디의 연설은 절정에 이른다. "권력이 인간을 오만으로 몰고 갈 때 시는 인간의 한계를 깨우쳐 준다. 권력이 인간의 관심 범위를 좁힐 때 시는 인간 존재의 풍요함과 다양성을 깨우쳐 준다. 권력이 부패하면 시는 정화해준다."

이 구절은 정치와 문학, 권력과 시의 미묘한 관계와 효용성을 언급할 때면 등장한다. 지난해 이맘때 나는 이 연설문을 앰허스트의 '프로스트 도서관'에서 읽었다. 암살 40주년이었던 당시 미국 언론들은 케네디를 집중 조명했다. 도서관에는 '대통령과 시인'이란 제목으로 케네디 연설 기념 전시회가 열렸다. 연설문은 퓰리처상을 받았던 대통령답게 세련된 정치적 감수성이 넘쳐난다. 이런 부분도 연설에 있다. "힘 때문만이 아니라 문명 덕분에 전 세계로부터 존경받는 미국을 바라본다." 부시 비판론자들이 애용하는 구절이다. 힘을 앞세운 부시의 일방주의 정책을 난타할 때 즐겨 쓴다.

케네디의 연설은 권력 세계의 경구(警句)로 남아 있다. 권력은 오만과 독주의 유혹을 받는다. 그게 오래가면 국정은 골병이 든다. 그 징후는 이렇다. 권력자 주변에 충성파가 들끓고 여론 비판을 참지 못한다. 노무현 정권에선 그런 장면들이 이어지고 있다. 헌법재판소를 향해 뿜어내는 천박한 악담과 증오가 열린우리당에서 충성 경쟁하듯 쏟아졌다. 권력을 쥐었다고 세상 한번 뒤집자는 권력 핵심부 386 출신들의 자기 과신은 끝이 없다.

386권력의 뒤틀린 열정이 담긴 엉터리 개혁에 다수 국민은 지쳐 있다. 그들이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있을 때 정권은 험악했지만 경제는 잘나갔다. 그들은 취업 걱정은 하지 않았고 일자리가 널려 있었다. 100대 1의 좁은 문에다 만점에 가까운 토익 성적을 들이밀어도 취업하기 힘든 지금과는 딴판이었다.

취업 고민을 하지 않은 때문인지 요즘 청년 실업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살기가 어려우니 국정 우선순위를 민생으로 바꾸라는 다수 국민의 요구를 절실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권력에 취해 현실과 멀어진 탓일까. 현 정권의 오만과 독선을 깨우칠 방법은 없는 것일까. 권력을 겸손하게 다루게 할 계기는 없는 것일까. 프로스트를 기렸던 케네디의 연설은 그래서 더욱 실감나게 다가온다.

박보균 정치담당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