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모두가 수능에 매달리는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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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매년 공무원 출근시간이 조정될 뿐 아니라, 비행기 이착륙마저 일시 중지되는 비상사태와 같은 날이 있다. 수능시험 날이다. 수십년 동안 이루어졌고, 모두가 비정상적이라고 하지만, 변화 없이 꾸준히 계속된 일이다. 여기에 올해의 수능은 조직범죄를 연상케 하는 부정행위까지 일어났다.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이용한 시험 답안의 조직적인 교환이라니! '대학만 갈 수 있다면 뭐든지 하겠어요'라는 입시생들의 절박한 심정이 갈 때까지 간 것이다. 하지만 더 답답한 것은 이런 수능과 대학입시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수능과 관련한 비정상적인 일은 수능 당일에만 일어나지 않는다. 수능 준비 과정은 학교와 사설 학원, 그리고 수험생을 둔 부모 모두 '교육'의 이름으로 스스로를 기만하는 일종의 굿판이다. 수능이 끝나면 또 어떠한가? 학생들은 마치 해방된 노예처럼 풀어진다. 수능 후, 대학에 들어가도 이런 난장판은 계속된다. 수능 등급을 인생 등급으로 성급하게 낙인찍은 불쌍한 군상들이 대학마다 만들어진다.

수능과 관련된 우리의 심리는 학벌과 출세, 그리고 성공이라는 삶의 목표와 연결된 정교한 믿음이다. 대학은 신분상승을 위한 지름길이며, 또 명문대의 입학은 가문의 영광이 된다. 학벌 미신은 이런 믿음의 핵심이다. 여기에, 학벌 미신이 나쁘기에 바꿔야 한다는 말조차 학벌의 신통한 효험을 인정하는 주문이 된다. 수능 부정을 막겠다고 전파차단기를 설치하겠다는, 또 수능 부정 행위자의 대학 응시 자체를 제한하겠다는 정부의 엄포는 마치 대학이 만드는 성공의 부적이 확실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일이다. 얼마나 중요한 일이기에!

아이들은 수년 동안 학교에서 성적을 잘 받기 위해 커닝이라는 것을 별다른 죄의식 없이 경험했다. 휴대전화를 이용한 수능 부정행위는 단지 더 큰 시험에 평소에 하던 일을 조금 더 크게 벌인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 간 큰 아이들의 도덕적 파탄을 염려하는 어른들이 있다면, 지난 수십년 동안 배짱 좋게 시험 방법을 바꾸는 얄팍한 수단으로 대학과 학벌의 미신을 유지시킨 정부와 교육전문가의 노력에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 국가가 통제하는 시험을 통해 대학 교육을 관리하겠다는 생각이 수십년 동안 바뀌지 않았다는 것은 거의 광기(狂氣)라고 할 것이다. 여기에는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가 보장해 주는 놀이판에 끌려들어가는 연기를 한 대학도 훌륭한 조연자였다.

한국사회에서 성공을 이루었던 수많은 사람의 심리를 탐구한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일관되게 확인할 수 있었던 사실은 이들의 성공에 출신대학이나 대학교육이 별다른 기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난히 동문을 강조하는 한국의 대학은 실제로 그 사람을 변화시키고 성공의 길로 인도했던 교육을 했던 적은 별로 없다. 대학교육은 요식행위였고, 항상 성공한 사람들이 받은 진정한 교육은 그들이 살았던 사회가 제공한 삶의 교육이었다.

수능이 자식들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믿는 부모들의 미신은 겨우 10% 이하의 고등학교 졸업생들만이 대학을 갈 수 있었던 시대의 산물이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의 고단한 삶이 '명문대학을 나오지 않아'라고 믿었다.

이제 우리는 수능과 대학의 미신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제한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대학입시를 국가대사로 생각하는 지금의 위정자와 부모들은 국가 경쟁력의 차원에서 수능의 미신을 타파해야 한다. 학벌의 신화를 무너뜨리는 지름길은 수능과 대학입시를 무시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수능이 자동차 운전면허시험처럼 되도록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국가가 대학의 학생 선발을 대행하거나, 대학을 대신해 이것을 고민할 이유는 전혀 없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