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응보를 넘어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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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마을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한복판에 사형대와 사형수의 모습이 보인다. 죄목은 대수로운 것이 아니다. 토끼 한마리를 밀렵했다는 정도다. 공개처형의 의도가 사람들을 겁주어 범죄를 막자는 데에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사람들 틈에서 몰래 도둑질이 행해진다. 사형폐지론자들의 반(半) 우스갯소리다.

***범죄 막느냐 촉발하느냐

사형제도 존폐 논의는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종교적.윤리적 차원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책적.경험적 차원의 것이다. 경험적 논의의 핵심은 사형이 범죄, 특히 흉악범죄 예방의 효과가 있느냐는 것이다.

사형의 범죄 제지(制止)효과 긍정론은 간단한 상식론에 기초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고통을 피하고 즐거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비용-편익'의 계산에 따라 합리적 행동을 한다. 때문에, 처벌당하지 않도록 행동할 것이라는 가정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식론으로 납득되지 않는 여러 경험적 결과들이 제시돼 왔다. 사형을 폐지한 국가에서 폐지 전보다 흉악범죄가 증가하는 결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미국의 주(州) 가운데 서로 인접하고 문화적 동질성이 있으면서 한 쪽에서는 사형을 폐지하고 다른 쪽에서는 사형을 존속시키고 있는 주들 사이에서 살인범죄의 발생률에 별 차이는 없었다.

이런 결과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살인은 우발적인 경우가 많고 살인범죄자는 범행 당시 그 행위 결과에 대해 합리적 고려를 하지 않는다는 견해가 있다. 일정한 범죄에 대해 사형을 규정함으로써 그 범죄의 사회적 중요성을 높이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잠재적 범죄자에게 도리어 그 범죄를 저지르도록 촉발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계량경제학자는 한 사람을 처형하는 것이 8명 내지 20명의 살인범죄 예방효과가 있다는 주장을 펴 격렬한 반론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이처럼 사형의 제지효과에 대해서는 상반된 경험적 연구결과들이 혼재한다.

사형제도의 위헌 여부를 다룬 1976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한 판례는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형의 제지효과에 관한 통계적 연구들이 긍정론이나 부정론의 어느 쪽에 대해서도 확실한 입증을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96년 결정에서 사형제도가 합헌이라고 보았다. 그 가장 중요한 논거는 사형이 '다른 생명 또는 그에 못지 아니한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형이 어떻게 다른 생명의 보호를 위해 필요한 것인지는 설명이 없다. 추측하건대 사형의 범죄예방 효과를 전제한 듯하지만,예방효과의 근거에 대해서는 "그렇게 기대하는 것이 논리적으로나, 소박한 국민 일반의 법 감정에 비추어 볼 때 결코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할 뿐이다.

경험적 차원에서 사형폐지론의 또 하나의 중요한 논거는 오판의 위험성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점까지 고려할 때 사형제도는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마저 결여한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사형의 정당화에는 두가지 확실성이 필요하다.

***요건 결여한 사형존폐론

첫째는 피고인이 유죄라는 사실측면에서의 확실성이고, 둘째는 사형이 적절하다는 사회적.윤리적 확실성이다. 이들 요건이 충족되지 못함에도 사형제도가 고집되고 있다면 이 제도의 본질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사형은 다름아닌 적나라한 응보일 뿐이다.살인과 같은 흉악범죄에 대한 사회로부터의 복수야말로 사형의 본질이다. 문명에 의해 억압돼 있으나 여전히 제거되지 않은 원시적 야만의 속성이 사형에 의해 발산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야 의원 1백55명이 사형제도 폐지 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형 존폐에 관한 논의가 분분하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경험적 결과에 비추어 본다면, 사형제도 존폐 여부는 정책적.논리적 판단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원초적인 복수감정을 넘어설 수 있는가 여부가 문제의 핵심이다. 사형이 폐지된다면 우리의 국가 이미지도 훨씬 나아질 것이다.

양건 한양대 법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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