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평가 '빅3' 신용 의심스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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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세계 신용평가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무디스, 스탠다드&푸어스, 피치 등 3대 신용평가회사, 그들은 자본주의의 파수꾼일까 아니면 시장의 무한권력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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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포스트는 22일(현지시간)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가 자본주의에 중요한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감독을 받거나 책임을 지고 있지 않다"며 베일에 싸인 신용평가 회사의 이면을 3개면에 걸쳐 해부했다.

◆ 통제장치가 없다=기업이나 국가가 돈을 빌리려고 채권을 발행하려면 거의 예외 없이 신용평가회사의 투자등급이 필요하다. 등급이 높을수록 채무자가 지불하는 이자가 싸진다.

신용평가회사 평가에 따라 기업은 수백만 달러의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입기도 한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 외환위기 때처럼 국가의 재정이 뿌리째 흔들리기도 하고 국제 금융시장이 요동을 치기도 한다.

신용평가회사들은 이렇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사실상 아무런 감시.감독을 받지 않는다.

신용평가회사 문제의 핵심은 그들의 평가가 얼마나 객관적이고 공정한가에 달려있다.

WP는 수십 명의 전.현직 신용평가회사 간부들이나 금융전문가, 월스트리트 증권사 직원과 투자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신용 평가 과정에 주관적 판단이나 평가 조작, 압력이 끼어들 여지가 많다고 지적했다.

예컨데 무디스의 이사진 대부분은 무디스의 평가를 받는 '고객회사'의 임원을 겸하고 있다. 무디스는 "이사진이 고객사 신용평가엔 관여하지 않는다"고 밝힌다.

뉴욕증권거래소(NYSE)등 주요 금융기관이 이사회 구성원의 타기업 임원 겸직 등을 까다롭게 규제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미국의 각종 금융부문의 경우 개혁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반해 신용평가회사의 문제점에 대한 논의도 없다. 신용평가회사들은 외부와 단절된 채 영향력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 평가 믿을 만 한가=미국 1만4000개 기업 재무담당자들의 연합체인 재무전문가연합(AFP)은 지난 4월 영국.프랑스의 관련단체와 함께 신용평가회사'빅3'의 신뢰성과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들 스스로 새로운 행동강령을 만들 것을 요구했다.

신용평가회사가 '무소불위의 힘'을 갖게 된 것은 1975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과도한 경쟁의 부작용을 없앤다는 명목으로 국가공인통계평가기관(NRSRO)이라는 제도를 도입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때 NRSRO로 지정된 3개 회사는 튼튼한 진입장벽을 구축하며 과점체제를 확고히 했다.

이런 진입장벽과 감시 부재로 평가의 공신력이 흔들리고 있다.

신용평가는 수석 분석가가 주재하는 평가위원회에서 결정된다. 평가위원회에서 수석분석가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수석전문가의 추천은 위원회 진행시간의 80%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분석의 기본 토대가 된다. 이 때문에 분석가의 사감(私感)이 평가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분석가는 "친구가 사장으로 있다는 이유로 그 회사가 높은 등급을 받도록 최대한 노력했다"고 말했다. 후에 이 회사는 실적이 내리막길을 걸었다. 3개 신용평가회사가 전세계 수만 개의 회사를 다루다 보니 평가가 부실해지고 있다. 분석가 한명이 55개사를 한번에 담당하고 있을 정도다. 이에 따라 신용 발표 전 불과 수분 혹은 수초 만에 심층 분석 없이 평가가 급조되기도 한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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