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조 백일장 10월] 심사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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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시조의 걸음걸이에는 우주율이 살아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무의식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기도 하는데 시조의 절묘한 묘미는 바로 이점에 있다.

한국의 명시 반열에 누구나가 손꼽는 조지훈 선생의 '승무'의 가락이 시조인 것은 무엇을 얘기해 주는가. 미당 서정주 선생의 '문둥이'도 그렇고 유치환 선생의 '울릉도'도 그렇다. 이 분들은 시조를 알지 못했다. 다만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리기 위해 수없이 고민하고 노력하던 시인들이었다.

만들어 내놓고 보니 그것이 시조라니! 그러나 다달이 발표되는 자유시 중에 절제된 시형의 거의 모든 작품은 시조의 형식 장치와 그리 멀지않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놀랍게도 이 말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시인들이여 시조를 모르고 어찌 자유시를 쓰려하는가.

이제 바야흐로 가을이 점점 깊어가고 있다.

손영희씨의 '들길에서'란 작품은 깊은 여백에 맑게 스미는 회색 물방울과도 같은 은은함이 있다. 어머니의 거친 발등 위에 내리는 여문 별빛을 읽어내는 삶은 그만큼의 고통을 함께해온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소중한 것이다.

윤채영씨의 '옹기를 보며'에도 그 아픔은 잘 형상화 되어있다. 우리의 그릇인 옹기가 갖는 상징성에 의미를 애써 부여하는 자세가 믿음직스럽다. 두 작품다 낡고 오래된 풍경이긴하지만 거기서 오는 아픔을 건강하게 떠받치는 진정성에 선자들은 신뢰를 얹기로 하였다.

많이 응모된 학생 작품 중에 황인희의 '유성을 보았다'를 선정한다. 각 장의 연결에 신경을 써주기 바라며 가급적 단어의 중복을 피하면서 뜻을 살려 써보기 바란다.

<심사위원:박기섭.이지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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