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KE907편에 무슨 일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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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지난 4월 15일 오후. 승객 322명을 태우고 인천에서 출발해 런던 히스로 공항으로 향하던 KE907편은 급히 항로를 변경해야 했다.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로 히스로 공항이 폐쇄됐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KE907편은 파리 샤를드골 공항으로 기수를 돌렸다.

“승객을 안전하게 모셔라” … 15시간 육·해·공 수송작전

도착 30분 전, 샤를드골 공항에 항공기가 몰리면서 착륙이 불가하다는 연락이 왔다. 항로를 다시 바꿨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이었다. 같은 시각 서울 대한항공 본사에서는 긴급 대책회의가 열렸다. 회의를 주재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특명을 내렸다. “모든 승객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수송하라.”

갑작스러운 항로 변경을 통보 받은 프랑크푸르트 지점은 비상이 걸렸다. 우선 밤 늦게 도착한 KE907편 승객을 숙박시킬 호텔과 버스 확보가 시급했다. 사정은 다른 나라 항공사도 같았다. 호텔 확보를 보장하기 힘든 상황. 지점은 온 힘을 다해 항공기가 공항에 도착한 지 1시간30분 만에 바덴바덴에 4개 호텔 250개 객실을 확보했고 공항으로 버스를 보내 승객을 이동시켰다.

이날 유럽의 거의 모든 공항은 공황 상태였다. 대한항공 유럽지역본부와 파리, 프랑크푸르트, 런던 3개 지점은 비상 연락망을 구축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결론이 났다. ‘버스로 도버 해협을 건너 런던 히스로 공항까지 승객 전원을 모신다.’
유럽본부는 독일 버스 회사와 심야협의 끝에 버스 6대를 확보했다.

다음 날 아침 프랑크푸르트 지점은 목적지가 다른 일부 승객을 제외한 270명의 승객을 버스에 태우고 바덴바덴-칼레-도보-히스로 공항에 이르는 15시간의 육상 및 해상 수송 작전에 들어갔다. 버스에는 프랑크푸르트 지점 직원 2명과 로마 지점장, 이스탄불 지점장 등 4명이 동승했다.

15시간의 이동은 쉽지 않았다. 식사부터 문제였다. 유럽지역본부는 파리에 있는 식사 서비스 제공 회사로부터 300명분의 샌드위치를 긴급히 공급 받았다. 샌드위치는 냉장차에 실려 바덴바덴과 칼레 중간의 고속도로에서 승객에게 제공됐다. 같은 시각. 유럽지역본부장은 프랑스 칼레에서 현지 직원과 버스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극심한 교통대란으로 칼레와 도버를 운항하는 페리 예약도 쉽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6대의 버스를 한꺼번에 실어 이동할 수 있는 시간에 예약을 했다. 예약이 취소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운임은 선지불했다. 하지만 예약된 시간에 버스가 도착하지 않았다. 당초 예약한 페리를 타지 못하면 더 이상 승선할 페리가 없었다.

유럽지역본부는 독일 버스 회사에 SOS를 쳤고 결국 페리 출발 시간을 늦춰 승객 전원이 승선했다. 런던에서는 승객 도착 시간에 맞춰 택시와 호텔을 확보해 놓고 있었다. 드디어 버스가 도착했다. 자정을 넘긴 시각이었다. 독일 바덴바덴에서 히스로 공항까지 15시간에 걸친 ‘KE907 수송작전’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날 밤 KE907편 승객에게 대한항공은 특별한 회사로 기억됐다. 한 탑승객은 “다른 항공사였다면 승객들이 프랑크푸르트에서 자기 집까지 알아서 가라고 했을 것”이라며 감탄했다. “환상적인 서비스였다”는 감사 편지와 전화가 이어졌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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