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낡은 이념대결 뛰어넘는 새 운동 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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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최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수호를 내세우는 모임이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개신교 NGO의 '기독교 사회책임'과 1980년대 학생운동권 출신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연대'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들은 현 정권과 진보진영, 한나라당과 현 보수진영을 함께 비판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오늘의 한국사회는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극한적 대결로 분열됐다. 정치권은 물론 지식인과 종교계, 언론계와 문화예술계까지 편 가름 현상이 심각하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각계의 양식 있는 인사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이념 갈등을 극복하는 새로운 대안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최근의 모임 결성도 그 연장선에서 나왔다고 보고 일단 환영한다.

이들은 '중도 통합'또는 '보수진영의 이론적 길잡이'를 자처한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이 의미를 가지려면 몇 가지 전제가 충족돼야 한다. 우선 정치세력과의 제휴를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순수성을 잃을 경우 또 하나의 정치운동이나 편 가름에 불과하게 된다. 벌써 일부 보수층이 이들을 정치 싸움판의 대리인으로 이용할지 모른다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반 노무현'수준을 뛰어넘는 것도 급선무다. 이들은 창립선언문에서 우리 사회를 위기상황으로 규정하면서 현 정권을 혹독하게 비판했다. 그런데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은 "기득권 유지에 전전긍긍한다"는 정도에 불과하다. 비록 운동의 출발은 현 정권의 국정 운영에 대한 불만이었다 하더라도 거기에 머무른다면 '낡은 보수'와의 차별성을 찾기 힘들게 된다. 운동을 주도하는 인사 중엔 과거 대학가를 휩쓴 '주사파'(김일성 주체사상의 추종자)에서 전향한 이들이 포함돼 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그 정반대의 극한을 반사적으로 선택할까 우려된다.

이념적 극한 대립이 판치는 사회에서 중도를 외치며 그 극복을 주장하는 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용기있는 행위다. 그 용기가 생명력을 가지려면 현실 비판을 뛰어넘는 그들 나름의 새로운 비전 제시가 선행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