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어버이날 다시 생각해 보는 우리 시대의 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엔 엄마를 잃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엄마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았음을 깨닫게 되는 자식들 얘기가 나온다. 아들·딸에게 철철이 김치를 해 나르고 청국장·된장을 담가 부쳐주느라 쉴 틈 없던 엄마가 실은 몹쓸 병을 앓고 있었다는 것조차 까맣게 몰랐다. 하지만 먹고사느라 바쁘단 핑계로 부모를 잊고 사는 것이 어디 그네들 뿐일까. 자식들 봉양을 바라긴커녕 뜯어먹으려 달려들지만 않아도 고마운 게 요즘 부모들의 솔직한 심정일 게다.

전통적인 가족 내 부양 시스템은 삐걱댄 지 이미 오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8년 현재 65세 이상 노년층의 절반 이상이 생활비를 스스로 벌고 있다. 열 명 중 여섯 명은 자녀와 함께 살지 않는다. 배우자조차 없이 홀로 사는 노인도 100만 명에 달한다. 이들 중 4분의 1은 자녀에게 한 달에 전화 한 통도 받지 못한다. 노인이 숨진 뒤 한참 만에 발견되는 ‘고독사’가 빈번한 까닭이다. 현실이 이런데도 우리 사회의 노인 복지는 여전히 자식들의 봉양에 상당 부분을 기대고 있다. 재산이 없고 아파서 일도 못 하는 노인이라도 돈 버는 자식이 있으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제도가 대표적이다. 이 같은 비수급 빈곤층 노인 중 절반은 자식에게 생활비 한 푼 못 받는데 말이다. 따라서 다른 선진국들처럼 빈곤층 노인에 대해선 국가가 부양하는 시스템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 효(孝)가 사라져가는 빈자리를 사회적 효라도 채우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사회의 부양 능력에도 한계가 있다. 대한민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빨리 늙어가기에 더 그렇다. 지금은 젊은이 7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지만 40년 후엔 1.3명이 1명을 먹여 살려야 한다. 사회는 물론 각 개인도 스스로 노후 대비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전통적 효 사상을 오늘에 맞게 되살리는 작업도 중요하다. 부모에 대한 공경심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으로 이어진다. 건강한 사회를 이루는 핵심 요소들이다.

어버이날인 오늘, 부모의 사랑을 잊고 있진 않은지부터 되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