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걸프전때 못낸 생색 "아프간서 만회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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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일본이 미국 테러사건을 계기로 외교적인 실리를 챙기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1991년 걸프전 때 생색을 못낸 채 돈만 날리고 말았다고 판단하고 있는 일본 정부와 정치권은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나서 외교적인 실리를 확보하겠다는 속내를 감추지 않고 있다.

전쟁을 이용해 자위대 활동 강화, 주변국과의 마찰 해소 등 숙제를 풀면서 중동.인도 등 제3국에 대한 외교적 영향력도 확대하고 있다.

◇ 숙제 해결=일본의 대미외교 최대 현안 가운데 하나는 집단적 자위권 실현 등을 통해 미.일 안보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도 공공연히 이를 요구해왔다.리처드 아미티지 미 국무부 부장관은 2년 전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실행을 골자로 한 보고서를 낸 적이 있다. 그러나 한국.중국 등 주변국의 반발과 일본 헌법 위반 논란 때문에 주저해왔다.

그러던 것이 미 테러사건 이후 테러대책특별조치법안.자위대법 개정안이 지난 18일 중의원에서 가결돼 일본은 사실상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는 한발짝 더 나가 2년 한시법인 테러대책특별법을 영구법으로 만드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나카타니 겐(中谷元)방위청장관은 23일 "미국의 테러공격 지원에 파견되는 자위대는 로켓포를 휴대할 수 있다"고 밝혀 자위대의 무기사용 범위를 대폭 확대할 계획임을 시사했다.

테러사건 이후 국제정세가 테러 대 반테러의 구도로 변하고 그밖의 다른 갈등은 풀자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고이즈미는 한국.중국을 방문,갈등을 해소하는 길을 열었다.

◇ 제3국 외교 강화=일본은 테러 사건 이후 거물 정치인들을 아프가니스탄 주변 국가에 잇따라 보내고 있다. 인도.파키스탄이 1998년 핵실험을 한 후 일본은 양국에 경제제재 조치를 취해왔으나 26일 이를 해제할 예정이다.

미국을 간접지원한다는 명분 아래 파키스탄에 47억엔을 긴급지원키로 한 데 이어 28일에는 모리 요시로(森喜朗)전 총리를 특사로 인도에 보내 30억엔 무상지원 의견을 전달할 예정이다.

일본에서 아프가니스탄 부흥회의 개최를 추진 중인 일본은 이달 초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전 외무장관을 이란.사우디아라비아에 보내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주일 외교소식통은 "미국을 적극 지원하면서도 이슬람권과 마찰을 빚지 않으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해석했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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