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럼] DJ정권의 외로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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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권력의 정상에서 하산(下山)길은 통치의 집념과 강박감이 교차한다.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돼야 하는데" "레임덕(권력누수)없이 밀고가야지" 하는 상념이 머리 속을 차지한다.

*** 권력 下山길 호랑이 등에 타

그런 장면은 5년 단임제의 숙명과도 같다. 짧은 임기의 단임 대통령은 '호랑이 등에 탄'이치 탓이다. 계속 달리지 않으면 떨어지거나, 호랑이에게 물릴 수 있는 처지다.5년 단임제는 통치의 역동성이 있어야 국정을 장악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때문에 하산길에선 통치의 영(令)을 다시 세울 수 있는 국정운영의 새로운 소재와 수단을 찾는다. 여기에다 공권력을 중심으로 권력기관을 재정비하는 데 골몰한다.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호랑이 등에 탄 권력의 속성을 꿰뚫고 있었다. 집권 후반기에 그가 내세운 것은 '역사 바로세우기'였다.전두환.노태우 전임대통령들을 단죄하는 태풍 속에 그는 권력 내부에 긴장감을 넣고 정국 주도권을 다졌다.

그것은 중국 문화대혁명의 광풍(狂風)속에 마오쩌둥(毛澤東)이 노린 '천하대란(天下大亂)을 통한 천하대치(天下大治)'의 축소판이었다. YS는 그것을 발판으로 3金시대의 대통령은 자기 혼자서 끝낼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태풍의 과도함에 따른 국정 혼선과 아들의 비리로 허망하게 무너졌다.

노태우 정권은 북방외교라는 화려한 개척지를 기반으로 내치를 끌어가려 했다. 그러나 북방외교는 내치로 연결하기엔 한계가 있었고 민주화의 징검다리라는 소극적 리더십이 부메랑이 돼 하산길에서 허덕였다. 盧정권이 맛본 후반기 통치의 외로움은 호랑이 등에 탄 단임제의 숙명을 실감하지 못한 탓이다.

지금 김대중(DJ)정권의 국정 운영의 지렛대는 힘이 떨어졌다. 한반도 질서의 현상유지 상태를 깨는 또 다른 천하대란을 통한 천하대치의 구상은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서울답방이 불확실해지면서 헝클어졌다.

임기 초반 IMF체제 극복, 중반에 6.15 정상회담이 있었지만 후반의 목표는 뚜렷하지 않다. 장기간의 국정표류는 그 때문이다. 다른 호랑이로 갈아타든지, 방향을 바꿔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때문에 DJ 정권의 질주가 고독해 보일 수밖에 없다.

하산길을 더욱 외롭게 하는 것은 권력 내부의 흐트러짐과 공권력의 일그러짐에서 비롯된다. 단임제 대통령들은 호랑이 등에 탄 자신의 모습에 권위와 품격을 더하기 위해 권력기관의 재정비에 나선다. 그러나 권력은 작더라도 공유하기 힘들고 대통령의 신임은 나누기 어렵다. 盧정권 하반기에 권력기반인 하나회는 나눠졌고, YS정권 후반기에 경남고 출신이 중심인 PK 세력과 경복고 인맥간의 분열양상이 두드러졌다.

DJ 정권에도 'MK(목포-광주)내부 갈등','목포 8인방'이란 말이 나돌고 있다.무엇보다 하산의 발걸음이 힘차기 위해선 제대로 된 공권력이 있어야 하는데 사정은 반대다. 공권력의 간판인 검찰을 향한 국민의 비웃음과 불신.개탄은 언제 끌날지 모를 정도다. 이용호 게이트 이후 드러난 수뇌부의 어처구니없는 처신, 조폭과의 연계 의혹,정치권 줄대기로 공권력의 체통은 형편없이 구겨졌다.

*** 검찰 수뇌부 인사 쇄신을

신승남 검찰총장의 행태는 그런 뒤틀린 모습을 더하고 있다. 이용호 사건에 연루된 동생문제에 대한 접근자세,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한계 발언은 몽땅 통치의 부담으로 돌아가고 있다. 愼총장이 金대통령으로부터 받은 편애는 전례 드물고 유별나다.

그를 키워주기 위해 동향인 법무장관을 그만두게 하고, 한나라당의 공세를 막아주려고 편법도 동원했다. 그런 총애를 받았으면 정권의 품위와 위엄을 세워줘야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공직자로서 주변관리 부족에 대한 자기 성찰은 부족하고 억울함.불만.과잉충성이 두드러진다.

DJ 정권이 남은 1년4개월간 호랑이 등에 탄 통치의 면모를 새롭게 다지기 위해선 공권력의 신뢰부터 회복해야 한다. 그 출발은 당연히 검찰 수뇌부의 전면적인 인사쇄신이다.

박보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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