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턱 내겠다" 노 대통령 대만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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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산티아고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려됐던 돌발 해프닝은 없었다. 오히려 부시 미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이 의견을 피력할 때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I agree absolutely)" "좋은 관점(good point)" 등의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특히 "민주적 지도자(a democratic leader)로서 나는 그를 신뢰한다(trust)"고 말했다고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전했다.

한.미 정상회담 직후의 한.호주 정상회담장에 나타난 노 대통령과 고위 관계자들의 얼굴은 근래 드물게 환한 표정이었다. 반 장관은 "노 대통령의 기분이 최고로 좋다"고 했다.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도 "역대 한.미 정상회담 가운데 가장 출중한 결과"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회담이 만족스러웠다"고 말한 뒤 "외교안보팀이 고생을 많이 했는데 서울에 돌아가 밥 한끼 내겠다"고 말했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이번 회담은 현지시간으로 20일 오전 10시25분(한국시간 20일 오후 10시25분)부터 11시5분까지 40분 동안 이뤄졌다. 정상회담의 경우 당일 아침에 보고를 받고 대책회의를 하는 게 상례다. 하지만 이날 회담을 앞둔 노 대통령은 19일 밤 회의를 끝낸 뒤 혼자 관련 자료를 숙독했으며, 다시 20일 오전 6시에 일어나 자료를 연구하는 등 준비에 몰두했다고 한다. LA 발언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반응이 주목을 받는 등 부담이 작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담 결과가 원만했던 배경은 세 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두 정상의 관계다. 지난해 10월 태국 방콕의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노 대통령에게 "내 친구(my friend)"라는 표현을 쓰며, "인간적으로 노 대통령을 좋아한다. 그와 대화하는 게 항상 즐겁다"고도 했다. 동갑(46년생)인 데다 솔직하고 직설적인 두 정상의 화법도 이번 회담에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부시 대통령의 경우 재선으로 한결 여유가 생긴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부시 대통령은 한국의 사진.카메라 취재진이 회담장에서 미국 취재진과 거친 취재 경쟁을 벌이는 장면을 보며 재미있다는 듯 활짝 웃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노 대통령의 이라크 파병 결단에 대한 '보은론'이 회담 분위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산티아고=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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