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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2만달러' 열쇠는 획기적인 품질 혁신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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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95년 1만달러를 돌파한 이래 9년째 1만달러대에 머무르고 있다. 우리의 최대 과제 중 하나인 '국민소득 2만달러'를 달성하려면 앞으로 매년 7%의 고성장을 지속적으로 유지한다 해도 10년 후에나 가능하다고 하는데 우리의 현실은 결코 만만치 않다. 다른 나라들도 1만달러에서 2만달러로 도약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우리는 좀 심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다면 '마(魔)의 국민소득 1만달러'라는 깊은 수렁이 생기는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소위 '품질의 협곡(峽谷)'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상품들의 투자수익률을 비교 분석한 자료를 보면 상대적으로 품질이 떨어지는 상품을 싸게 파는 경우 투자수익률(ROI)은 평균 15%, 고품질의 상품을 파는 경우 투자수익률은 35%에 이른다. 그러나 어중간한 품질의 제품을 어중간한 값에 판매하는 경우 투자수익률은 2%에 불과하다.

따라서 저품질.저가격으로 경쟁하던 후진국이 고품질로 경쟁하는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수익률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중간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러한 좁고 깊은 협곡에 들어서고 나면 이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경제를 돌이켜보자.

우리나라는 지난달 연간 수출액이 2000억달러를 돌파했다. 64년 1억달러 돌파 이후 40년 만에 무려 2000배의 성장을 이룩한 것이다. 이 기간 수출이 연평균 21%씩 성장한 셈인데 이것은 세계 20대 수출대국 중 가장 높은 수치다. 이런 눈부신 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것은 품질의 협곡을 성공적으로 건너뛴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다.

세계적인 기업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된 삼성그룹의 신경영은 '양적 경영의 시대를 종식하고 질적 경영의 시대로 '를 주창한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통해 시작됐다. 백색가전 시장에서 세계 정상급으로 도약한 LG전자의 성공도 일찍이 6시그마 품질혁신을 도입하고 이를 강도 높게 꾸준히 실천한 덕분이었다.

올해 제이디 파워(J D Power)사의 신차품질조사(IQS)에서 현대자동차는 도요타.벤츠.BMW 등을 제치고 중형차부문 1위를 차지해 세계 자동차 업계를 놀라게 했다.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 위크는 현대차가 세계시장을 질주할 수 있게 된 것은 정몽구 회장이 추진한 품질경영의 결과라고 극찬한 바 있다.

철강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한 포스코도 예외가 아니다. 72년 7월 포항제철의 첫번째 공장이었던 중후판 공장에서 최초의 제품이 나오자 당시 박태준 회장은 떨리는 손으로 기필코 도달해야 할 포스코의 미래 염원을 담아 '품질로서 세계 정상'이라는 기념 휘호를 썼다고 한다. 오늘날 포스코가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한 것은 이러한 품질 최우선주의를 일관되게 지켜왔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경제위기가 심각하던 87년 레이건 대통령이 승인한 국가품질개선법(Public Law 100~107)을 토대로 말콤 볼드리지 국가품질상(MBNQA)을 제정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획기적인 품질혁신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를 토대로 미국은 90년대의 장기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결국 품질 혁신만이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열쇠란 얘기다. 우리나라도 품질 제고를 국정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 국민소득 2만달러가 가능해지려면 품질 한국의 비전을 온 국민이 공유하고, 1등 품질의 기업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산.관.학이 합심하는 등 범국가적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박영택 한국품질경영학회 회장성균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