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의 스타로지] 산소같은 그녀 이영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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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그녀가 나타나기 전 사진기자에게 지나가는 말로 슬쩍 물었다. "이영애의 매력이 뭐죠?"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그 역시 지나가듯 답했다.

"상큼하죠. 백치미가 아니잖아요."

맞다. 포토제닉한 그녀는 게다가 총명하다. 멍한 눈이 아니라 세상을 응시하는 눈을 가졌다. 그 안광으로 광고판을 휩쓸더니 바야흐로 영화판까지 휘젓는 중이다. 그녀는 복도 많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광고모델 시장은 빈익빈 부익부라고 한다. 광고기획자의 눈과 귀는 대중의 취향을 향해 줄창 열려 있다. 하필 이영애인가. 그녀를 보며 사람들은 소비하고 싶어하지만 정작 그녀의 이미지는 소모되고 있지 않다.

"거저 돈 버는 건 아니에요. 커피 잔 하나 들더라도 생각, 또 생각하죠. 과장하거나 포장한다는 느낌이 안 들도록 말이죠."

예쁜 여자가 '생각'을 강조하니 달리 보인다. 처음 그녀는 홍콩배우 류더화(劉德華)의 어린 연인으로 TV에 나타났다. 음악은 애잔했고 손에는 초콜릿이 들려 있었다. '산소 같은 여자'로 거듭나기 전이었다.

전화벨이 울리면 광고 속의 그녀는 우아하게 파티장을 빠져나간다. 우아함은 그녀의 의상만큼 거추장스러운 존재다. 아늑한 영상과 아득한 현실의 모호한 경계에 그녀는 오래도록 머물러 있었다. 그녀에게서 차츰 일상의 냄새가 나기 시작한 건 배우로서 좋은 전조다.

말하는 인형보다는 사색하는 인간이 낫다. '인샬라'의 사막에서 '공동경비구역'을 지나 '선물'하나 챙겨 '봄날'을 보내기까지 그녀에게서 부자연스러운 기계음이 부지런히 떨어져나갔다. 제1과에서 제4과를 거치는 동안 수업의 진도는 누락 없이 차곡차곡 진행된 듯하다.

삶은 얼핏 드라마를 닮았다. '산소 같은 여자'라는 레이블이 부담스러울 듯한데 서른 살의 여배우는 뜻밖의 반전을 준비한다.

"제 좌우명이에요. 산소 같이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마치 "아저씨는 산소 없이 살 수 있어요"하고 되묻는 듯하다. 하기야 산소는 세상의 요소와 결합하여 물도 되고 황산도 된다.

아픈 질문을 던져 보았다. 초기에 주인공 배역을 딸 때 대타인 경우가 많았는데.

"리듬이죠. 전 파도의 리듬을 즐겨요." 먼저 가는 물살이 꼭 먼저 바위를 치는 것이 아니란 말로 들렸다. 하기야 빨리 달려가 바위에 부딪쳐 멍드는 풍경을 숱하게 보아오지 않았겠는가.

그녀는 감독이 원하는 대로 잰 듯이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다. '봄날은 간다'의 마무리도 원래의 콘티는 여주인공 은수가 카메라를 향해 걸어오는 장면이었다. 그녀는 뒷모습을 고집했고 쟁취했다. 뒷모습이 관객에게 더 많은 표정을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녀는 참 생각이 많다.

사족-영화에서 상우(유지태)가 그녀의 새차에 생채기를 내는 장면이 여운을 남긴다. 생활영어가 때로는 생활이 아니라 생존의 방식을 가르쳐 준다. 봄날은 가고 우리는 무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We must start again from scratch)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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