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레이더] '환차익 vs 수출 악화' 증시도 환율 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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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환율 문제가 증시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달 이후 원-달러 환율 급락에 아랑곳하지 않았던 증시가 지난주 후반부터 확 달라진 모습이다. 탄탄하게 오르던 증시는 달러당 원화 환율이 1070 선 밑으로 떨어지자 맥이 풀렸다. 종합주가지수는 다시 860 선으로 물러났다. 금리 인하나 고배당 전망 같은 호재는 불과 일주일 만에 약효가 떨어졌다. 결국 증시는 환율 하락과 무관했던 것이 아니라 그 폭과 속도가 문제였던 셈이다.

환율 하락이 증시에 나쁜 것만은 아니다. 국제자금이 달러화 약세를 피해 신흥 시장으로 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이미 우리 시장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들을 이탈하지 못하게 붙들어 매는 효과도 있다. 환율이 떨어지고 있는 동안은 환차익이 생기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이후 들어온 외국인들의 환차익을 어림잡아 계산해보면 약 2조5000억원에 달한다. 주가 상승으로 인한 차익에 버금가는 이득을 환율 하락을 통해 올리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외국인이 주식을 팔지 않는다는 것은 시장에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환율 하락이 빠르고 심하게 진행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수출 기업들의 채산성은 떨어지고, 밑지고 수출하는 기업이 속출한다. 실적 악화는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다. 투자심리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국제자금 입장에서도 실적이 나빠지는 기업의 주식을 살 이유가 없다. 최근 외국인들이 우리 주식을 적극적으로 사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실적 악화로 주가가 추락하면 할수록 외국인들은 환차익을 까먹게 된다.

결국 어느 모로 보나 우리처럼 수출에 목을 맨 소규모 경제의 증시엔 환율 하락이 결코 유쾌한 뉴스가 될 수 없다.

환율 하락 피해에 충분히 대비해 놓은 기업, 환율 하락이 오히려 득이 되는 기업 등으로 투자 범위를 좁혀야 할 것 같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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