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제주지사 주민소환 투표 청구서명 34%가 조작·무자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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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2007년 하남시장 주민소환투표 1차 청구 당시 선관위에 제출된 청구인 서명부. 주민 9명의 성명과 주소, 서명 등이 동일인 필체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제주도지사 등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 때 투표 청구에 필요한 서명부가 일부 조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2007년 시행 후 “정치적 반대 세력에 의해 악용되기 쉽다”는 논란과 함께 제기돼왔던 ‘청구 서명인 수 부풀리기’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보수 시민단체인 나라사랑실천운동은 5일 “선거관리위원회가 2007년 김황식 하남시장, 2008년 이연수 전 시흥시장, 지난해 김태환 제주도지사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 청구 서명부를 심사한 결과 허위 작성 등이 드러나 상당수 서명이 무효로 처리됐다”며 관련 자료를 검찰에 제출했다. 앞서 지난달 29일 나라사랑실천운동은 하남시장과 제주지사 소환투표를 주도했던 청구인 대표 5명 등을 서명부 불법 조작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검찰은 이르면 다음 주부터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 단체가 선관위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김 지사에 대한 소환투표 당시 투표 청구를 위해 제출된 7만6904명의 서명을 심사한 결과 33.6%인 2만5860명의 서명이 무효로 처리됐다. ▶강요·속임수 등 부정한 방법으로 행해진 서명이 1만4938개 ▶투표 청구권자가 아닌 자의 서명이 6560개 ▶동일인이 2개 이상의 서명을 한 경우가 3337개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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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김황식 하남시장 소환투표 1차 청구 때는 전체 서명인 수(3만2885명)의 42.4%에 달하는 1만3956개의 서명이 무효로 판정됐다. 2008년 9월 이연수 전 시흥시장에 대한 소환투표 청구의 경우 25%(1만1714개)의 서명이 무효로 처리되면서 유효 서명인 수가 법에 규정된 필요 청구인 수(4만1042명)에 못 미쳐 투표 자체가 실시되지 않았다. 김 지사 등에 대해선 주민소환 투표가 실시됐으나 모두 투표자 수 미달로 부결됐다.

중앙선관위 측은 검찰 등에 수사 의뢰를 하지 않은 데 대해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에는 무효 서명행위에 대한 처벌조항이 없기 때문에 해당 선관위에서 무효조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나라사랑실천운동은 “다른 사람의 명의와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하고 서명을 위조했다면 주민등록법 위반과 사문서 위조 등에 해당한다”며 “청구 당시 전문가들이 정밀 조사를 벌였다면 필요 청구인 수에 미달해 소환투표가 실시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당시 하남시장 소환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서명 위조가 없었고, 당시 선관위에서도 엄격하게 심사해 별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왔는데 지금 고발한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말했다.

이철재·최모란 기자

◆주민소환제는=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 등 선출직 지방공직자에게 문제가 있을 때 주민들의 투표로 소환 여부를 결정한다. 소환투표를 청구하려면 ▶시·도 지사는 주민의 10% 이상 ▶시장·군수·구청장은 15% 이상 ▶시·도의원은 20% 이상의 서명을 모아야 한다. 투표권자 3분의 1 이상 투표에 유효 투표의 과반수 찬성이 나올 경우 해당 공직자를 해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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