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전문가들의 주택시장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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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반포자이 아파트 값이 최근 매기가 줄면서 내림세로 돌아섰다. 3410가구나 되는 대단지인 데다 입지가 좋아 2008년 말 입주 이후 이 일대의 집값 상승을 주도했다. [중앙포토]

주택 가격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이젠 ‘대세 하락’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꽤 많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어떤 눈으로 주택시장을 바라보고 있을까. 본지가 주택 관련 연구원·교수·관료 등 5명의 전문가와, 현장에서 매매거래를 중개하는 공인중개사 5명을 대상으로 집값 전망을 조사했다. 그 결과 현재의 거래침체 현상이 심각하다는 데는 인식을 같이하고 있지만 정상화 전망에 대해서는 사뭇 다른 목소리를 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문가들은 대체로 “하향 추세가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었으나 거래 현장의 공인중개사들은 “실수요자가 대기하고 있어 크게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전문가들 “집값 하락 장기화 가능성”=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올 한 해 집값이 계속 떨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느린 경기 회복 속도, 중대형 주택 공급 과잉, 구매력 감소, 금리인상 전망, 대출 규제, 보금자리주택 공급 등으로 시장 회복이 당분간 어렵기 때문이다. 현대경제연구원 박덕배 연구위원은 “주택 과잉공급이 해소되는 2~3년 동안 집값 하락세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2005년 이후 매년 40만~45만 가구가 공급돼 지금은 주택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정부는 집값 전망을 ‘하향 안정세 지속’이라고 표현했다. 국토해양부 한만희 주택토지실장은 “주택시장은 급속하게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하향 안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집값 급락은 오히려 주택금융 시장을 어지럽히므로 현재의 완만한 내림세가 시장을 튼튼하게 받쳐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하락 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택산업연구원 권주안 연구위원은 “전셋값이 계속 오르는 것을 보면 주택 잠재수요는 여전히 넉넉한 편”이라며 “10% 이상 하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고성수 교수도 “아직도 집값이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면서도 “그러나 우리나라 주택시장에는 항상 대기 수요가 넉넉하므로 5% 이상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주택 상품·지역별로 차별화가 심화될 것이란 시각도 나왔다. 소형 아파트나 서울 중심부, 인기 지역의 집값은 곧 반등하지만 대형이나 수도권 외곽 등은 20~30%도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민은행 박합수 부동산팀장은 “수요가 많은 소형은 이사철인 올 8월부터 반등할 가능성이 크다”며 “다만 경기도 용인 등 중대형 공급이 많았던 지역은 추가 하락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조금씩 움직이는 데 희망”=공인중개사들은 전반적으로 시장 상황이 나빠 상반기 중 거래가 살아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바닥에 내려앉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에 침체가 오래가지는 않는다”고 희망 섞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서울 양천구 신정동 나래공인 김성신 사장은 “시세보다 10% 정도 싸게 나온 급매물이 요즘 들어 슬슬 팔리고 있다”며 “실수요가 조금씩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7~8월 이사철을 맞으면 반등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강동구 암사동 1등공인 양경 사장도 “지난 3월까지는 거래가 완전히 끊겼지만 4월부터는 급매물이 조금씩 거래되고 있다”며 “집값을 물어보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는 것을 보면 가격 반등 조짐을 느낄 수 있다”고 전했다.


강남구 대치동 우방공인 신용수 사장은 “집값이 전반적으로 다 떨어지는 게 아니라 거래가 안 되는 상황에서 몇몇 급매물이 나와 시세가 하락하는 것”이라며 “다만 상황을 떠보는 정도의 수요만을 보고 시장을 낙관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수요에 비해 중대형 주택 공급이 많았던 지역은 추가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데 중개업자들은 의견을 같이한다.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명성공인 이경엽 사장은 “급매물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 앞으로 3개월간 10% 이상 추가로 떨어질 여지가 많다”고 말했다. 분당은 인근 용인 수지 등지에서 중대형 아파트 공급이 넘쳐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곳이다. 용인 수지 일대는 올해 1만4000여 가구의 아파트가 입주를 기다리고 있는데 70%가 전용 85㎡ 초과의 중대형이다.

◆“당분간 관망을”=전문가나 공인중개사 모두 앞으로 시장을 움직일 변수로 ▶대출규제 완화 ▶보금자리주택 공급 시기 조절 ▶금리인상 등 정책·금융 요소를 꼽았다. 고성수 교수는 “정부 정책에 따라 시장 침체가 더 장기화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특히 대출규제가 계속되면서 금리까지 인상되면 시장 회복은 쉽게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노원구 월계동 미성합동공인 김우정 사장은 “거래 정상화를 위해서는 보금자리주택 공급 시기를 조절하고 주택대출 규제를 완화해주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집을 사려는 사람들에게는 당분간 지켜보거나 값이 시세보다 10% 이상 싼 급매물 위주로 접근하라고 전문가들은 권한다. 공인중개사들은 대부분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가 매수 시기로 좋다면서도 “가급적 투자보다는 실거주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박일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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