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공, 땅 판 뒤에도 용도 변경 추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에이치원개발 대표 洪원표(53)씨가 경기도 분당 백궁.정자지구 쇼핑단지를 사들이고 용도변경을 하기까지의 과정은 마치 한편의 시나리오를 보는 듯하다. 당시까지만 해도 건설업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洪씨가 1천5백97억원짜리 땅을 토지공사로부터 매입한 경위와 용도변경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떤 '보이지 않는 강력한 손'의 작용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란 느낌마저 들기 때문이다.

◇ 검증된 법인보다 개인을 선택=백궁.정자지구 땅을 매입하려 했던 포스코개발이 1998년 12월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해약하자 토공은 이듬해 4월 사단법인 군인공제회와 매매 협의를 시작했다. 같은 달 20일 토공은 용도변경 등의 조건을 묻는 공제회에 '업무.상업용지로만 가능하다'는 회신을 보냈다.

공제회는 이틀 후 토지매입의향서를 보냈고 토공측도 '3년 무이자 할부' 조건을 내세운 공제회측의 요구를 수용키로 했다. 그러나 매매 성사 막판(5월 21일)에 공제회가 '사업기간 장기화로 차질이 생기면 대토(代土.다른 땅을 받는 것)해달라'고 요구하자 토공은 당초 입장을 바꾸어 3일 뒤 洪씨 등과 전격적으로 매매계약을 했다.

공제회 관계자는 "군인기금을 운용하면서 위험이 예상되는 땅에 투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내부 지적이 일어 마지막에 대토 조건을 달았다"고 말했다.

매매과정의 우여곡절을 놓고 당시 부동산업계에서는 군인공제회가 이 땅을 사지 못하게 하려는 압력이 있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에 대해 토공측은 "군인공제회가 대토 조건을 내세우는 등 협상이 지지부진하던 차에 洪씨 등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 계약했을 뿐 압력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 형평성 어긋난 수의계약=토공은 99년 5월 24일 정자동 6번지 쇼핑단지 3만9천평을 洪씨 등에게 수의계약으로 판 것이 특혜라는 지적이 일자 "포스코개발이 해약한 땅은 관련법에 따라 수의계약으로 매각할 수 있다"며 특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문제의 땅 바로 옆 정자동 9번지 5천2백여평은 나산그룹이 부도로 해약한 똑같은 성격의 땅인데도 공개입찰로 내놔 현대산업개발에 낙찰됐다. 당시 현대산업개발은 이 땅을 평당 8백34만원선에 낙찰해 내정가보다 1백억원을 더 줬다.

토공은 "당시 정자동 9번지 일대 땅은 잘 안팔려 매각을 촉진하기 위해 여러 업체를 참여시키려고 공개 입찰했다"고 해명했다.

◇ 땅 매각 뒤 본격적인 용도변경 추진=쇼핑단지 3만9천평과 인근 업무.상업용지 1만5천평의 매매계약이 완료된 시점은 99년 6월 말. 98년 한 차례 용도변경 보류를 경험했던 토공은 99년 7월 성남시에 주상복합 아파트를 지을 수 있도록 다시 용도변경을 신청했다. 이미 땅을 업체들에 팔아 아쉬울 게 없었던 토공이 이처럼 용도변경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데 대해 건설업계에서는 매매계약 때 이미 용도변경 추진을 약속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땅을 매각하면서 연말(99년 말)까지 착공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인 점이 이같은 지적을 뒷받침해 준다.

에이치원과 아파트 시공 계약을 했던 H건설의 당시 담당자도 "일부 관계자가 '용도변경은 분명히 될 것'이라고 말해 시공약정을 맺게 됐다"고 말했다.

손용태.황성근.정효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