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뒤집기] 미장센, 체험마케팅으로 7개월만에 정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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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길거리엔 오색 물결이 넘친다. 시내를 활보하는 젊은이들의 머리색깔이 가을단풍만큼이나 다채롭다. 젊어 보이려는 욕심에서 흰 머리카락를 감추는 데 필요한 것으로만 여겼던 염색약이 개성을 뽐낼 수 있는 패션상품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머리카락 색이 사시사철 유행을 타면서 염색약 시장도 급성장하고 있다.

국내 염색약 시장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미미한 규모였으나 97년부터 두 자리 성장을 거듭해 올해 1천5백억원대에 이를 전망이다.

하루 아침에 '횡재'를 만난 염색약 제조회사들의 마케팅 경쟁도 뜨겁다. 국내시장에서는 독일 웰라가 90년대 초부터 부동의 1위였다. 시장점유율이 40%나 됐다. 세계 최대 화장품회사인 프랑스 로레알은 99년 진출해 25% 이상의 시장을 차지했다.

세계 굴지의 브랜드들이 석권하고 있던 안방시장을 되찾은 토종 브랜드는 태평양이 선보인 '미쟝센'이다. 지난해 1월 출시한 지 7개월 만에 1위에 올랐고, 1년 가까이 정상을 지키고 있다.

일등공신은 누가 뭐래도 마케팅 전략이다. 품질이 뒷받침했지만 마케팅의 신조류로 각광받는 '체험 마케팅' 개념을 도입한 게 주효했다. 프랑스어로 연출한다는 뜻인 미쟝센(mise en scne)으로 소비자들이 머리카락의 컬러를 연출하도록 한 것이다.

미쟝센이란 용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영화를 소비자가 체험할 수 있는 이벤트도 많이 열었다. 칸영화제를 비롯한 각종 영화 행사를 통해 문화.감성 상품으로 브랜드를 체험할 기회를 줬다.

대형 버스를 고급 헤어살롱처럼 개조한 '미쟝센 무빙헤어숍(사진)'은 체험 마케팅의 대표적 사례다. 냉.온수가 나오는 샴푸대까지 설치한 특장차가 서울과 수도권을 돌며 무료로 염색을 해준다. 하루 40여명이 이곳에서 머리 연출이란 신기한 체험을 하면서 구전(口傳)효과가 커졌다. 태평양은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자 버스를 한 대 더 늘려 지방에도 돌도록 했다.

염색약을 '약품'으로 인식하던 소비자들에게 '염모제'라는 용어로 파고든 마케팅 전략도 통했다. 약품 대신 화장품, 특히 헤어컬러 화장품이란 카테고리를 개척한 것이다.

이종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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