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복권 흥부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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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집이 가난하면 형제도 멀어진다'는 말을 무색하게 만든 일이 벌어졌다. 제2회 플러스 플러스 복권에서 1,2등에 당첨된 金씨네 형제가 보여준 깊은 우애는 제몫 차지하기에만 급급한 현대인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농사를 짓는 집안의 3남1녀 가운데 맏이로 태어나 조그만 사업을 하던 형은 4년 전 외환위기 때 사업체를 날리고 식당 종업원이 됐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혼자 살기에도 빠듯한 수입이면서도 추석이라며 동생과 이웃에게 복권 열장을 사서 선물할 정도로 마음은 '부자'였다.

당첨금으로 받은 현금 14억여원 가운데 아파트를 구입하느라 빌려 쓴 대출금을 갚기 위해 1억원만 제 소유로 한 동생 또한 물욕을 넘어선 '흥부'였다. 식당 종업원 월급으로 가족을 부양하기 쉽지 않을 터인데도 "나보다 형이 (돈이) 더 필요하다"며 아예 마음이 변하지 않도록 즉석에서 형 명의로 통장을 개설했다고 한다. 돈을 건네받은 형은 3남1녀가 공평히 나눌 것을 다짐했다.

이 형제의 행동은 가난은 죄가 아니라 다만 불편할 것일 뿐임을 일러준다. 형제는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단위다. 형제 사이에 신뢰와 사랑이 쌓여 있다면 혈연관계의 틀을 뛰어넘은 지역사회에서도 구성원간에 신뢰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형제는 최초의 경쟁자, 갈등의 원인으로 전락해 가고 있다. 이렇게 된 데는 가정교육의 책임이 크다.

최근 유엔아동기금에서 동아시아.태평양지역 17개 국가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났듯이 우리 가정은 '남을 돕고 존중하는 가치관'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다. 형제간.집안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아니, 희망이 있다. 가난한 가운데서도 이웃과 형제에게 작은 선물로 희망을 심어주곤 했던 형, 엄청난 재물이 생긴 후에도 형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잃지 않은 동생이 있는 한 우리 사회가 신뢰를 회복할 가능성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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